'다른 의견'을 충돌 아닌 생산적 논쟁으로 바꾸려면

입력
2021.10.29 04:30
14면
영국 조직문화 컨설턴트 이언 레슬리 '다른 의견'
"극한 대립 이유는 정말 페이스북 탓일까"
"현대 사회는 논쟁 과잉 아닌 논쟁 부재 시대"
"적정 수준 갈등은 새로운 아이디어 발전 이끌어"

"온갖 증오를 부추겼다"는 내부 고발자의 폭로와 함께 대표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 페이스북이 양극화의 온상으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의견 표현과 공유가 쉬운 SNS는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특징을 지녔다. 하지만 오늘날 '갈등의 시대'의 원인을 SNS 확장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너무 단순한 분석일 것이다. 차별과 혐오 표현은 디지털 바깥 세상에서도 늘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 간의 대화는 점점 엉망이 돼가고 있다. 왜 갈수록 무의미한 교착 상태에 빠지지 않고 상대와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걸까.

영국 광고 전문가이자 조직문화 컨설턴트인 이언 레슬리가 쓴 '다른 의견'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의견 대립이 극단화된 사회 현상을 대화 기술 부재로 설명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이 불쾌한 의견 충돌에 일조하기는 했지만 근본 원인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져 온 인간 행동의 변화다. 현대인은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는 대신 반대 의견에 적대감을 표하거나 아예 의견 대립을 피하는 일에 더 익숙해졌다.

저자는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을 인용해 '고맥락 사회에서 저맥락 사회로의 이행'을 갈등 사회의 주된 배경으로 꼽는다. 고맥락 문화에서 메시지는 은연중에 표현되고, 각 메시지는 단어 자체보다 맥락에 담겨 전달된다. 커뮤니케이션은 완곡하게 이뤄진다. 반대로 저맥락 문화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명쾌하고 직설적이다. 사람들의 말은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대체로 유럽과 북미 국가는 저맥락 문화, 아시아 국가는 고맥락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낯선 사람들과 상거래를 하며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세계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저맥락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온라인 소통은 저맥락 문화에 맞춰 설계됐다. 인간은 눈과 자세, 목소리의 높이와 억양으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맥락이 사라진다. 말하자면 온라인의 공허한 분노야말로 의견 대립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들은 외부 집단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며 결속을 다질 뿐 그 누구도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현대사회가 논쟁의 과잉이 아닌 논쟁의 부재를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적정 수준에서 발생하는 다른 의견과 갈등은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게 책의 골자다. 생산적 대립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오히려 조직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이야기다.

가령 갈등을 회피하려고 생산적 피드백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수동적 공격'은 최악의 조직문화다. '갈등 회피형' 조직에서 업무상 갈등은 개인적 문제와 쉽게 혼동된다. 업무상 갈등은 생산적이지만 관계 갈등은 파괴적이다. 개인적 갈등을 겪을 때 사람들은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만족감과 의욕이 떨어진다. 저자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항공사로 꼽고, 어떤 문제가 생기든 곧바로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내부 갈등 처리 방식'이 이 회사의 성공에 한몫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 전반부에서 다른 의견을 말하고 들어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후반부에서는 생산적 대화를 위한 핵심 원칙 10가지를 제안한다. 인질범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경찰, 이혼을 앞둔 커플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이혼 중재자, 약물 중독자를 치료해야 하는 상담사 등 적대적 대화를 풀어나가는 일에 탁월한 의사소통 전문가들의 사례에서 지혜를 구했다.

책은 사회학, 심리학, 역사, 문학, 예술, 정치, 철학 등 다양한 문헌 자료를 통해 좋은 논쟁의 중요성과 실천 지침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책 말미에 요약해 담은 '더 나은 대화를 위한 생산 도구' 목록에는 "의사결정에 의문을 던지고, 의심스러운 부분에 목소리를 내는 게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도록 하라, 리더는 지배적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등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다만 무의미한 논쟁이 통제 불능 수준에 이를 정도로 만연한 시대여서 제시한 실천 지침이 다소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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