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중용?... 노태우 '국가장' 예우하되 조문은 피했다

입력
2021.10.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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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과오 있지만 공도" 애도 메시지
'국가장'으로 공로 예우, 조문은 직접 안 해 
여권 및 5·18 단체서 '국가장 반대' 비판도

정부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26일부터 닷새간 국가장(國家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직접 조문하지 않았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등 고인의 공로에 대한 예우를 갖추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7일 "노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강제진압과 12·12 군사쿠데타 등 역사의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의 추진,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공과를 거론하면서 국가지도자로서 '포용의 제스처'를 취했다.


靑, 여론 주시 속 내부회의 거쳐 '국가장' 결정

이에 앞서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현행법상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중대범죄(내란죄 등)로 예우가 박탈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 여부에 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정부의 결정에 앞서 문 대통령은 청와대 내부회의를 거쳐 국가장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분출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해 민주화를 앞당긴 결정을 염두에 둔 판단으로 보인다. 내란죄 주범이지만 유족들이 과오에 수차례 사과한 점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감안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 통합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청와대와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에야 애도 메시지와 조문 여부를 밝힌 것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상황에서 국민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여권·피해단체 등 반발... 文 대통령 조문 안해

실제 여권에선 국가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지역 국회의원 7명 전원은 이날 성명에서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장으로 예우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역사적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직접 찾지 않는 것도 여권 일부와 5·18 관련 단체의 반발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27일 오후 아세안 화상회의 참석과 28일 유럽 순방 출국 일정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거나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문 대통령 대신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방문했다.

유족 뜻 존중해 파주 통일동산에 묻힐 듯

노 전 대통령의 장지는 국립현충원이 아닌 파주 통일동산이 될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실형이 확정돼 현행법상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정부 결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지만, "노 전 대통령 재임 시 조성한 파주 통일동산에 모시고 싶다"는 유족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으로 명명된 국가장은 30일 영결식과 안장식을 거행하면서 마무리된다.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는 "정부는 이번 장례를 국가장으로 해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