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들이 윤석열 후보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 홍준표 후보 쪽으로 완전히 뒤집힌 것 같지는 않지만, 판세가 매우 유동적이다. 윤 후보가 한 번만 더 삐끗하면 뒤집힐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한 캠프 관계자의 언급이다. 그간 홍 후보의 상승세가 매섭긴 했지만 그래도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 후보가 경선에서 무난하게 승리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기류였다. 당 조직을 장악한 윤 후보가 50%로 비중이 더 확대되는 당원 투표에서 훨씬 우위를 보일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전두환 발언과 ‘반려견 사과’ 사진 파동으로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가 완연해지면서 승부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다. 윤 후보가 여전히 당원투표에선 우세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홍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 나가고 있어 마지막까지 계가를 해야 하는 ‘반집 승부’의 혼전 양상이다.
역대 가장 치열했던 경선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맞붙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이었다. 여당의 적수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두 주자가 전체 여론조사 지지율 1, 2위를 다투면서 경선이 대선 본선전과 다름없었다. 당내 의원들도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사생결단식 네거티브전과 세 대결을 벌였다.
이번 국민의힘 경선이 당시 못지않게 승부를 점치기 어렵게 됐지만 그때보다 더 경쟁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현역 의원들과 당협위원장의 압도적 다수가 윤 후보를 지지하는 반면, 홍 후보 캠프에는 현역 의원이라곤 조경태 하영제 의원 2명밖에 없다. 캠프 규모 면에서 골리앗과 다윗 싸움이다.
이처럼 조직 측면에서 윤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승부가 접전 양상이 된 것은 윤 후보나 캠프가 ‘셀프 낙선 운동’에 다름없는 캠페인을 벌인 탓이 크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윤 후보 캠프는 여의도의 2류급 선수들만 모아 놓은 거 같다”며 “선거 운동을 안 하고 그냥 가만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셀프 낙선 운동’ 중에서도 특히 손바닥 ‘왕’(王) 자’ 논란과 ‘전두환 발언’은 당심에 상당한 내상을 입힌 경우다. 두 사례 모두 윤 후보가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각각 천공 스승 논란, 반려견 사과 사진 등으로 파장을 더 키웠다. 국민의힘 의 한 관계자는 “손바닥 왕 자로 당심이 한번 출렁거렸다가 겨우 진정됐는데 또 흔들리는 조짐이다”고 말했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한 전직 의원도 “정치인에게 몇 가지 금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두환이다. 그걸 왜 건드렸는지 모르겠다”며 “그래도 윤 후보가 이길 것으로 보지만, 더 이상 실책을 해서는 정말 안 된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계속된 실언과 대비해 2030세대의 지지를 받는 홍 후보의 역전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홍 후보 캠프의 여명 대변인도 “조직 동원 면에서 열세라 하더라도, 이준석 대표 선출에서 보듯 당심이 결국 민심을 따라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두환 발언 파동 이후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기는 조사가 잇따라 나와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보수층 입장에선 선수 교체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찮다. 예상 이상으로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 홍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완강하기 때문이다. 25일 공개된 코리아리서치의 야권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홍 후보가 38.9%로 윤 후보(28.8%)를 10.1%포인트 앞섰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홍 후보가 37.4%로 윤 후보(49.8%)에게 크게 뒤졌다. 당심과 민심의 간격이 좀체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국민의힘 한 의원은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말대로, 홍 후보의 과거 이력을 오랜 지지층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각종 막말에다 홍 후보가 당대표 시절이었던 2018년의 6·13 지방 선거 참패 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한 게 의원들과 핵심 당원들이다. 이들에겐 ‘홍 후보로는 본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당장은 윤 후보가 여당의 집중 공격을 받아서 그렇지, 홍 후보가 여권의 타깃이 돼 과거 막말 등이 부각되면 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호영 의원이 “젊은 세대들이 예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해 실언 논란에 휩싸이긴 했으나 당의 전반적 기류를 반영하는 셈이다.
홍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도 당내 의원들이 모이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선 과정에서 홍 후보가 윤 후보만 집중 공격하고 ‘조국 수홍’ 논란에 휩싸였던 것도 그가 여권의 역선택을 받고 있다는 의심을 키운 대목이다. 달리 보면 홍 후보로선 국민의힘 지지층 내부의 불신을 극복하는 것이 중도층을 설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과제다.
요컨대 국민의힘의 당심이 외견상 민심과 간격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당원들로선 “윤 후보가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홍 후보도 과거 행태로 봐서 믿기 어렵다"는 고민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정한울 여론조사 전문위원은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가 윤 후보를 확실하게 앞서 나가면 당원들에게 선수교체를 선택할 확신을 줄 수 있지만, 여론조사도 워낙 들쭉날쭉해서 당원들이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경선 승부는 이제 결승선을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내달 1· 2일 당원 모바일 투표, 3·4일 당원 전화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를 실시해 5일 최종 승자를 가린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당원 투표에서 앞선 윤 후보와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홍 후보가 각각 자신의 우위를 얼마나 극대화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29일 3차 맞수토론과 31일 서울 수도권 토론회 등 두 번의 TV 토론이 미세한 흐름을 좌우할 1차 변수다. 이번처럼 접전에선 고심 중인 당원들이 막판 TV를 보고 표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후보가 그간 TV토론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당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고 윤 후보가 초보치고는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으나 다시 윤 후보의 실언이 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 다른 결정적인 변수는 당원 투표율이다. 이달 8일 발표된 2차 예비경선 당시 당원 선거인단 수는 37만9,000여 명이었으나 본선전 당원 선거인단은 19만여 명이 더 늘어 56만9,000여 명에 이른다. 신규 당원 중 2030세대가 4만8,000명으로 추산되지만 60대 역시 엇비슷하게 늘었다. 홍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가입했다고 하나, 윤 후보 측 역시 밑바닥 조직세를 활용해 당원들을 대폭 늘려 누가 유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들이 얼마나 당원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여부다. 2차 예비 경선 때는 당원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했다. 윤 후보 캠프는 신규 당원 중 그의 지지자들이 훨씬 더 늘었다고 주장하지만, “2030세대가 자발적으로 당원에 가입한 점으로 볼 때 윤 후보 측이 모은 당원은 사실상 종이 당원이어서 투표율이 낮을 것이다”는 게 홍 후보 측 반박이다.
양측은 결국 당원 표심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고 막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윤 후보는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윤석열로 이기는 것이 문재인 정권에 뼈아픈 패배를 주는 것"이라며 반문 결집에 주력했고, 홍 후보는 당원 메시지에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준표만이 이재명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본선 경쟁력을 강조했다. 개표 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다. 요기 베라의 야구 명언대로 이번 경선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