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서방 국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추가 접종)까지 맞는데,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들은 여전히 백신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12억 아프리카 인구 중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친 비율은 고작 2% 남짓.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률 70%를 돌파하며 속속 ‘위드 코로나’로 가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백신이 없어 강제로 ‘위드 코로나’를 해야 하는 처지다.
‘백신을 공평하게 나눠 갖자’는 간곡한 호소를 외면당한 아프리카는 결국 최후 수단으로 ‘복제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부국의 백신 기부와 제약사의 공급망 확대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기다리느니 자력갱생하겠다는 것이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기술 이전 허브’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꾸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백신 공동구매·배분 기구 코백스가 주도하고, 제약사 바이오백과 생명공학회사 아프리젠 등이 참여한다. 에밀 헨드릭스 아프리젠 연구원은 “강대국이 우리를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며 “우리는 아프리카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mRNA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에 사용된 최첨단 생명공학 기술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완성품을 거꾸로 분석해 원리를 파악하고 재현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기법으로 mRNA 백신 복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복제 대상은 모더나 백신이다. 완전하지는 않으나 연구자들이 분석한 염기서열 등 많은 정보가 공개돼 있다. 모더나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에는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누차 약속했던 터라 소송 위험도 적다.
AP는 “일부 전문가들은 복제 백신이 불평등을 바로잡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방법 중 하나로 여긴다”며 “WHO가 최초 개발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사상 처음으로 직접 복제 백신 개발에 나섰다는 건 글로벌 백신 공급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준다”고 평했다.
첫 번째 목표는 1년 안에 임상시험에 착수하고 곧바로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아가 저소득국가도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제조법을 공개할 예정이다. 페트로 테르블란치 아프리젠 경영 책임자는 “국제제약업계는 우리가 성공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벌써 폄하하고 있다. 우리는 보란 듯이 해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mRNA 백신을 상업적으로 생산·공급하게 되면, 결국 지식재산권 침해 논쟁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만은 않다. 기존 mRNA 백신 회사들에는 경제적 손해가 예상되는 탓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재권 문제에 대한 대승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유엔 국제의약품구매기구 산하 의약품특허풀의 찰스 고어 국장은 “아프리카는 외부 도움이 아니라 자립을 원한다”며 “모더나가 우리와 함께 일하도록 끝까지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백신 지재권 일시 면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럽연합(EU)과 영국 등 일부 국가의 반대에 부딪혀 이달 초 열린 회의도 무위로 끝났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재권 면제를 지지하고 나섰지만, 제약사들은 제조법 공유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을 지낸 톰 프리든이 “지구촌이 모더나와 화이자에 인질로 잡혀 있다”고 일갈했을 정도다.
특히 모더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데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백신을 개발했으니 그 혜택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최근 누바 아폐얀 모더나 회장은 “글로벌 공급을 확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라며 재차 선을 그었다.
미국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그램 ‘초고속 작전’을 지휘한 데이비드 케슬러 보건부 수석과학자는 “모더나를 지금 위치로 성장시키는 데 미 행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그들은 우리가 무얼 원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mRNA 백신 전문가인 졸탄 키스 영국 셰필드대 교수도 “백신 복제는 가능하나, 그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며 “모더나가 전문 기술을 공유한다면 백신 개발을 훨씬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