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를 빛내는 길

입력
2021.10.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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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유물관에 삼국지의 위(魏)나라가 지금의 수도권과 충청남도 일대까지 다스렸고, 한(漢)나라 영토가 한강 이북 지역을 뒤덮은 디지털 지도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정부가 동북공정을 선전한 셈이다. 이달 5일 문체부 국정감사 영상을 보니 배현진 의원이 지적하자 수정했다고 한다.

문제는 또 있었다. 재작년부터 해를 넘겨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탈 많던 '가야본성' 전시회와 관련한 문제도 다시 거론되었다. 문화재청이 올해 1월 유네스코에 가야 고분군 등재를 신청하면서 남원은 '기문(己汶)', 합천을 '다라(多羅)'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재 표현, 즉 임나일본부의 근거 명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박정 의원이 국감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했지만 바뀐 것은 없다. 본건과 관련하여 현지에서도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기문'과 '다라', 낯선 말이다. '일본서기'에 한반도 남부 지역을 점령 통치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중에 기문과 다라가 있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의 고문헌에는 한반도 내에 그런 지명이 없다. 당연히 기문이 남원, 다라가 합천이라고 말할 근거도 없다. 기문과 다라가 남원과 합천이라고 처음 주장한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는 대표적 식민사학자다. 그 내용을 보니 의도가 보이는 추정이다.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박정 의원 말대로 "가야사 복원에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표기를 사용하는 것은 사업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며 이를 세계유산 등재에 사용하는 것은 한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가야사를 중시한다고 보여주기식 행정을 하면 안 된다.

대안은 간단하다. '남원' '합천'의 이름으로 등재하면 된다. 굳이 '기문' '다라'를 쓸 필요가 없다. '기문'과 '다라'의 위치 및 지배 운운하는 일제의 주장은 정합성이 없고, 강력한 반론도 많은데, 왜 특정인과 특정 학파의 설을 조급히 따라야 하는가. '일본서기'에서 관련 내용을 보자.

"신공왕후가 신라를 공격해 깨트리고, 이어서 비자발,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7국을 평정했다… 백제왕이 충성을 맹세하였다.(369년)" "(백제가 말하길) 반파국이 저희의 기문 땅을 차지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 같은 은혜로 원래 속했던 곳에 돌려주라고 처결해 주십시오… 기문과 대사를 백제에게 주었다.(513년)"

기록대로라면 예부터 영호남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얘기다. 당연히 일제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직도 '임나의 변천' 지도에 남원과 합천을 기문과 다라로 표시한 일본 교과서가 있다. 이렇듯 식민사관은 여전한데 이벤트에만 골몰할 때가 아니다. 등재에만 매달려 우리 손으로 기문과 다라가 남원과 합천이라고 써내면 한국 고대사는 무슨 모양이 되겠는가.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표현이 있다. '일본서기'를 읽으면 절로 생각나는 말이다. 게다가 널뛰기도 그런 널뛰기가 없는 책이다. 한반도를 고향처럼 말하고 왕인 박사가 학문의 시조라고 했다가, 돌연 삼한을 정벌했다거나 광개토태왕이 조공을 바쳤다고 하는 책이다. 백제 멸망 후, 일본 왕의 권위를 높이고 당시의 정치 수요와 내부 단속을 위하여 급조하는 바람에 가공과 사실이 뒤섞인 탓이다. 그러므로 여타의 사료 및 유물과 비교해보지 않으면 탈이 난다.

역사는 특정 학파의 전유물도 속도전의 대상도 아니다. 모든 사료와 학설을 제한 없이 공개하고 토론해야 한다. 가야를 빛내는 길은 역사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