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로맨스와 친나치

입력
2021.10.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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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에드워드 8세의 사랑

영국 서식스 공작 부처인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왕실에 삿대질하며 출문한, 이른바 '멕시트(Megxit, 브렉시트에 빗댄 조어) 스캔들'로 여론이 들썩이던 무렵, 영국 언론은 90년 전 원조 로맨스의 주인공 에드워드 8세(1894~1972)와 월리스 심슨(1896~1986)의 이야기를 새삼 들추어냈다.

메건을 두고 왕실의 첫 흑백 혼혈, 이혼 경력 여성이라 소개한 기사와 자료들이 더러 있지만, 웨일스 공 찰스의 부인 커밀라는 예외로 두더라도, 월리스 역시 두 차례 이혼한 뒤 에드워드 8세와 재혼한 여성이었다.

1931년 한 파티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된 둘은 1934년 무렵에는 주변인들이 모두 눈치챌 정도로 관계가 깊어졌다. 국왕 조지 5세의 장남인 에드워드(당시 웨일스 왕자)는 왕위를 이을 왕세자였고, 전직 배우인 심슨은 해운사업가인 두 번째 남편(Ernest Simpson)을 둔 유부녀였다. 1936년 1월 조지 국왕이 숨지고 왕세자는 왕이 됐다.

그해 10월 27일, 월리스가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남편의 외도를 주된 사유로 들었지만 알 만한 이들은 그게 진실의 전부라 믿지 않았다. 영국 왕실도, 내각도 긴장했다. 스탠리 볼드윈 당시 총리는 국왕을 만나 월리스의 이혼을 만류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월리스 없이는 왕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왕위를 동생 앨버트(조지 6세)에게 넘기고, '윈저 공작 전하(HRH)'가 됐다. 그는 왕위 승계 작업 중에 19.77캐럿의 에메랄드 반지로 소송 와중의 월리스에게 청혼했다. 월리스는 이듬해 5월 이혼했고, 둘은 6월 3일 왕가 하객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 직후 부부는 히틀러의 초대로 독일 제3제국을 사실상 국빈 방문, 나치 각료들과 유대를 맺었다. 전후 연합군은 나치 문서에서 일명 '윈저 파일' 즉 에드워드를 다시 영국 국왕에 복귀시키는 계획을 추진한 흔적을 발견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