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워터 룰 VS 경고 의무

입력
2021.10.24 18:00
0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의 부인 강윤형씨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소시오패스”라고 언급한 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강씨가 직접 검진하지 않고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이 후보에 대한 소견을 밝힌 게 의료 윤리를 어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원 후보는 “대통령 후보의 정신 건강은 공적 영역”이라고 반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등장으로 시끄러웠던 ‘골드워터 룰’ 논란이 한국에서도 불거진 모습이다.

□미국정신의학회(APA)가 1973년 채택한 ‘골드워터 룰’은 정신과 전문의가 직접 검진하지 않고 동의를 얻지 않았다면 공인이라 하더라도 전문적 소견을 밝혀선 안 된다는 의료윤리 지침이다. 1964년 한 잡지사가 정신과 전문의를 상대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베리 골드워터가 정신적으로 대통령에 적합한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7만5,000달러를 지급한 사건에서 유래했다. 대선에서 상대를 ‘정신적으로 이상하다’고 공격하는 것은 흔한 정치 공세다. 정신의학이 이런 정쟁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온 것이다.

□골드워터 룰은 그러나 트럼프 등장으로 심각한 논란에 휩싸였다. 재임 기간 내내 대통령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작 전문가들이 침묵을 지키는 게 합당하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일군의 학자와 전문의들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기 때문에 그의 정신 상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대중에게 경고하는 것이 직업적 의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재선 실패로 수그러들었으나, 그가 다시 등장하면 골드워터 룰 논란도 재현될 게 뻔하다.

□골드워터 룰을 어긴 전문의는 APA에서 제명될 수 있으나, APA가 의료 면허를 수여하는 기관은 아니어서 의료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골드워터 룰’과 ‘경고 의무’ 중 무엇을 중시할지는 개인 소신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강씨의 의견이 직업적 소신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정치 공세에 불과한지는 결국 국민들이 판단할 몫이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