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미국, 독일, 프랑스 등 10개국 대사의 추방을 결정했다. 현재 수감 중인 반정부 인사의 석방을 요구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외신들은 추방이 실현된다면 에르도안 집권 19년 중 서방 진영과의 갈등도 최고조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터키 중부 에스키셰히르를 찾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는 외무장관에게 꼭 필요한 명령을 내렸다”며 “미국 등 10개국의 터키 주재 대사들은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타국의 외교사절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는 것은 해당 인물을 자국에 들이지 않거나 추방하겠다는 의미다. 10개국 중 7개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6개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들은 터키를 이해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터키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사 추방’이라는 강경책을 선택한 건 18일 해당국 대사들이 공동 성명을 내고 수감 상태인 반정부 인사 오스만 카발라의 석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카발라는 에르도안 정권의 탄압을 받은 대표적 인사다. 터키의 유명 자선사업가인 그는 2013년 5월 정부가 쇼핑센터 건설을 위해 이스탄불 도심의 나무를 뽑아내겠다고 결정하자 반대 시위에 나섰다. 카발라를 비롯한 시위대에 대한 당국의 강경 진압에 그간 터키 정부의 소규모 개발 정책에 반대했던 일반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섰고, 결국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2017년 터키 검찰은 4년 전의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카발라를 구속 기소했다. 재판에서는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이스탄불 법원은 지난해 무죄를 선고하고 카발라를 석방했다. 그러나 검찰은 카발라가 풀려난 직후, 2016년 쿠데타 시도에 연루됐다는 별도 혐의로 그를 다시 체포했다. 2019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카발라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없다. 그저 에르도안에 맞섰기에 체포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석방을 촉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언급한 10개국은 “아직 공식적인 대사 추방 통보가 오진 않았다”면서도 즉각 그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다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의장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대사 10명의 추방은 터키 정부의 권위주의 체제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지적했다. 예베 코포드 덴마크 외교장관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공동선언을 한) 10개국은 공통된 가치와 원칙을 계속 지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추방이 실현된다면 에르도안의 집권 19년 동안 가장 심각한 서방국과의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