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탄생] 눈앞의 츠베덴을 만나고서야 기획자는 안도했다

입력
2021.10.23 11:37
<1> 클래식 공연 준비의 첫걸음, 지휘자 마중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벌써 두시간째 뚫어져라 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22일 오후 6시30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로비에서 유정의 KBS교향악단 공연기획팀 과장은 지휘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가 만나야 할 사람은 얍 판 츠베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츠베덴은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지휘할 예정이다.

이날은 츠베덴이 공연 리허설 등 일정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오후 5시 무렵 이미 츠베덴이 탄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했지만, 한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지휘자는 입국 게이트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괜찮아요. 얼마 전 다른 지휘자 때는 3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는 걸요." 그러면서 유 과장이 덧붙였다. "일단 지휘자가 한국행 비행기를 무사히 탔다는 사실 만으로도 공연의 반은 성공한 셈이죠. 코로나19 탓에 워낙 변수가 많아서요. 만약 예정된 비행기를 못 탔다고 생각하면… 악몽이 시작되는거죠. 최악의 경우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고요."

해외 지휘자, 연주자가 참여하는 클래식 공연의 경우 본격적인 준비과정은 이렇게 해당 공연 담당자가 아티스트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시작된다. 유 과장은 "해외 연주자라고 무조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가급적 가는 편"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 외국인은 시설격리를 감수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팬데믹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관객을 위해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해 준만큼, 최근에는 지휘자 공항 마중이 관행이 됐다.

이날 해외 입국자들이 통과하는 'D' 구역 게이트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유 과장의 시선도 바빠졌다. 그 눈빛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비록 한국에 도착했다고는 하나 지휘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이기 때문. 유 과장은 "사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해외 연주자 입국 문제가 잘 협의됐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기는 건 아닌가 싶어서 눈앞에 츠베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몇 번의 기대와 실망이 반복한 뒤였을까. 짙은 감색 재킷을 입은 츠베덴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유 과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헬로, 마에스트로!(지휘자님, 안녕하세요!)" 열렬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유 과장을 발견한 츠베덴도 활짝 웃었다. 츠베덴은 "공항까지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입국 과정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경우 공연 주최 측이 지휘자를 한국 숙소까지 안내해 주는 편이지만 이날은 그럴 수 없었다. 한국에 도착한 외국인은 코로나 확진 여부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정부가 지정하는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규정때문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해외 입국자는 공항 밖으로 바로 나갈 수 없고, 정해진 동선에 따라 시설로 이동해야 한다. 츠베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유 과장과 츠베덴 사이에는 외부 왕래를 제한하는 펜스가 쳐져 있었다.

유 과장은 츠베덴이 시설에서 머무는 동안 먹을 만한 간식을 준비했다. 우스개 소리로 '사식'이라고 부르는 간식 가방에는 간단한 비스킷과 샌드위치, 음료 등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건네자 지휘자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 26일부터 시작될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 일정 등을 지휘자에게 설명했다.

공항으로 오는 길에 비해 돌아갈 때 유 과장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지휘자가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만에 하나 입국을 못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며 전전긍긍했거든요. 공연계 종사자들한테는 이런 말이 있어요.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나고, 열띤 음악적 대화를 거쳐 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과정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연주자뿐만 아니라 사무국 소속 스태프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들은 관객을 직접 만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연을 창조하는 또 다른 주역들이다. 기자는 22일 지휘자 마중을 시작으로 29일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가 끝나는 순간까지 오케스트라 사무국 인턴으로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취재, 기록할 예정이다.

인천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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