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예술혁명의 두 얼굴,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입력
2021.10.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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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展’ 특집 <2>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의 다른 이름인가? 대답은 ‘예’ 그리고 ‘아니요’다. 미술사에서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은 서로를 부정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모순되는 말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이 답변에 과학적 논리를 제공한다. 관찰자에 따라 모든 해석이 가능하며 따라서 모든 해석은 불확정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믿는 것이 좋다. 유기적인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독선과 아집(我執)이 만들어내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예술 분야의 혁신적 작가나 운동을 지칭하는 말이다. 원래 전쟁터의 전위병을 뜻하는 군사 용어로 18세기 프랑스에서 생겨났으나, 19세기부터 정치나 사회개혁의 급진파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다가 20세기에 접어들어 예술 용어로 정착되었다.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다중적이다. 보통명사로 쓰이면 혁명적 예술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이 경우 ‘프랑스 미술의 3대 혁명’이라 불리는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모두가 아방가르드의 영역에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대문자 A로 시작되는 고유명사로 쓰일 때 아방가르드는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예술 운동을 지시하는 의미가 된다. 유럽의 다다와 초현실주의, 러시아의 절대주의와 구성주의 따위의 미술 운동들이 이에 속한다.

한편 모더니즘(modernisme)은 근대의 예술 사조로서 새로움을 덕목으로 삼는 예술 경향의 총칭이다. 근대의 상한점에 대해서는 학문 분야마다 차이가 있으나 전통과 권위에 반대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미술에 있어 모더니즘은 1860년대 중반의 인상주의에서 시작되어 후기인상주의→야수주의→표현주의→입체주의→추상주의→1960년대 중반의 미니멀아트로 이어지는 약 100년간의 미술 흐름을 나타낸다. 모방론에 근거한 고전주의 이념과 형식에 도전하고 추상주의를 거쳐 물자체로 환원되는 역사적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다. 패러다임이란 진주알을 꿰어놓은 실처럼 연속성을 유지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패러다임의 고수라는 대목에서 아방가르드와 다른 점이 발견된다.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차이는 지속과 단절의 메커니즘에 있다. 모더니스트들이 혁신 속에서도 변증법적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태도를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예술의 연속성을 부정하고 파괴하는데 천착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진정한 아방가르드였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경우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유럽 모더니즘과 러시아 전통미술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광범위한 실험적 경향들을 포괄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절대주의와 구성주의를 비롯해 신원시주의, 광선주의, 입체미래주의, 추상미술 등의 경향들은 모더니즘 혁명과도 연대하고 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바실리 칸딘스키는 아방가르드뿐만 아니라 모더니즘의 주인공들이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혁명 시대의 산물이었다. 말레비치, 칸딘스키, 블라디미르 타틀린, 미하일 라리오노프, 나탈리야 곤차로바 등의 러시아 작가들은 서유럽에서 유입된 모더니즘 미술양식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을 위한 동력인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었다. 러시아 고유의 전통인 치열한 삶의 리얼리즘은 전에 없는 미술 경향들을 탄생시켰다. 1915년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선언’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되었다. 이보다 앞선 1910년 유럽에 나가 있던 칸딘스키는 ‘최초의 추상화’를 제작함으로써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유럽 모더니즘을 융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은 20세기 예술혁명의 두 얼굴이다. 러시아인 말레비치와 칸딘스키가 주도했던 혁명들이었다. 이 두 예술 운동 사이의 동질성과 이질성, 그리고 그 속성들 사이에 흐르는 지속과 단절의 역설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20세기와 그 이후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라 여겨진다.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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