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당하고 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대통령 긴급조치 1호’ 피해자 고(故) 오종상씨가 사건 발생 47년 만에 국가로부터 정신적 손해를 배상받을 길이 열렸다. 국가배상 소송 제기 10년 만에 대법원이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오씨는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지 나흘 뒤인 이달 4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오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심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던 앞선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오씨에겐 1억1,500여만 원, 유족들에겐 1억 원의 위자료가 확정됐다.
오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4년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에게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중앙정보부에 영장 없이 강제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폭행·협박,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이기지 못한 오씨는 허위자백을 했고, 이를 근거로 긴급조치 위반·반공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1977년 만기출소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오씨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국가가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0년 12월 오씨의 형사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오씨와 가족들은 2011년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국가배상 사건을 맡은 1심은 2012년 5월 “오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민주화 보상심의위원회의 생활지원금 지급 결정에 동의하고 이를 수령해, 구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 심리 없이 내리는 결정으로 ‘오씨가 이미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배상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본 셈이다. 다만 재판부는 오씨를 제외한 가족들의 위자료 청구는 일부 인정했다.
반면 2심은 오씨가 요구한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는 예외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시 1심과 같은 사유로 배상 청구가 불가능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6년 5월 “오씨가 민주화 보상심의위의 보상금 등 지급 결정에 동의한 이상 위자료 청구 소송은 부적법하다”며 가족들 위자료만 인정했다.
그러나 이후 헌법재판소가 ‘보상금이 지급됐다는 이유만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박탈하는 건 위헌’이라는 취지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오씨는 헌재 결정을 근거로 다시 대법원에 국가배상 소송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헌재 결정으로 기존 ‘각하’ 판결의 근거가 됐던 구 민주화보상법 조항의 효력이 사라졌다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결국 사건을 다시 심리하게 된 대법원 재판부는 "정부 소속 중앙정보부 수사관이 영장 없이 강제 연행해 1주일간 불법 구금하고 구타 및 고문 등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냈으며, 오씨는 3년 넘는 기간 동안 무고한 수형생활을 하게 됐다"며 오씨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