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리추얼의 종말’은 리추얼(특정 의례)이 줄면서 소통이 없어지고 결국엔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예컨대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이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TV 앞으로 모여서 다 함께 시청했다면, 지금은 이 같은 리추얼이 사라졌다. 각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제각각 자신의 입맛에 맞는 영상을 본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것만을 의미할까. 저자의 답은 ‘아니오’다. 삶의 완전한 유연화는 상실을 가져온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리추얼은 시간을 유의미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삶에 구조를 부여하고 삶을 안정화시킨다. 공동체가 창출하는 가치와 상징적인 질서를 몸에 배게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리추얼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팬데믹 상황은 이를 더 심화시켰다. 저자는 “바이러스가 리추얼의 종말을 완성시켰다”고 표현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몸으로 감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외로움과 고립이 지배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타인의 바라봄, 즉 관심에는 치유의 힘이 있는데 바라봄이 부재한 시대에 살게 됐다. 그것도 마스크를 쓴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