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마당 사이로... 공중에 떠 있는 돌집

입력
2021.10.22 04:30
11면

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매끈한 직사각형의 돌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경기 양평의 단독주택 흔연재(대지면적 310㎡, 연면적 149.12㎡)는 마을 어귀부터 시선을 빼앗는다. "귀가할 때 집이 멀리서도 보였으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요구를 건축가는 "육중한 매스(덩어리)를 띄우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떠 있는 2층은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석재, 화강석으로 마감했다. 김경옥(38), 김수진(34) 부부와 여섯 살 딸, 고양이 두 마리가 이 집에 산다. 내년에는 둘째가 태어난다. 기쁘고 반가운 모습이라는 '흔연(欣然)하다'의 뜻처럼, 집은 반가운 새 식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구를 없앴더니... 정해진 방향 없이 열린 집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여러 난제를 던졌다. 설계를 맡은 고석홍 소수건축사사무소 소장은 "모순적으로 보이는 요구가 많았다"고 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삶을 살아야 하고, 조용히 작업을 해야 하는데 항상 어딘가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동물도 살아야 되고, 고양이는 나가면 안 되는데 나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양립하기 쉽지 않은 조건들이었다.

제품 기획 일을 하는 남편은 집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건축주는 "일을 하면서도 딸이나 고양이들과 소통하기"를 바랐다. 건축가는 이를 위해 2층 서재에서 일을 하면서도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설계해 '함께이면서도 분리된 공간'을 만들었다. 2층 서재로 향하는 길에 낸 6m 길이의 브리지(다리)는 생활 공간과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한 차례 더 넓힌다.



내부로 들어서면 마주하는 1층의 거실과 주방에는 가전, 가구가 없다. TV도, 소파도 없다. 냉장고는 주방 옆 다용도실로 밀어 넣어 보이지 않는다. 아일랜드 식탁 앞에 놓인 테이블 하나가 눈에 띄는 가구의 전부다. '미니멀리즘'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TV가 있으면 맞은 편에는 소파가 위치하고, 거실은 자연스럽게 TV를 향하는 방향성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기능도 고정된다. 건축가는 가전, 가구를 시야에서 없애 공간의 특정한 방향성을 제거하고자 했다.

"일반적인 평면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대로, 공간은 가벼워지고 유연해졌다. 거실은 어떤 장소든 된다. 딸아이와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카페가 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침실도 됐다가, 남편의 스튜디오도 된다. 건축주는 안방에 침대도 두지 않았다. "우리가 이 집에 사는 모든 시간 동안 이 방을 안방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안방에 침대도, 붙박이장도 두지 않았어요. 살아 보니 계절에 따라 잠자기 좋은 공간이 변하더라고요. 토퍼만 들고 가면 그곳이 안방이 되는 거죠."


두 개의 마당... 남향 중정과 북향 테라스

두 개의 마당인 중정과 뒤뜰(테라스)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배치돼 있다. 마당으로 향한 창을 열면, 거실은 이내 "풍욕 하는 느낌이 드는" 바람길이 된다. 이 역시 거실이 특정한 쪽을 향해 있지 않아도 되는 '열린 공간'이라 가능한 일이다. 집의 중심인 거실에 맞닿은 두 개의 마당은 외부 공간이지만, 집의 내부로 인식된다.


마당은 각기 다른 장점이 뚜렷하다. 집을 둘러싼 담장은 중정의 한 벽을 이룬다. 진입 도로에 접하는 담장의 윗 부분은 곡선으로 낮췄다. 밖에서 중정의 모습이 보일 듯 말 듯하다. 햇빛은 시시각각 유선형의 담장을 타고 중정에 드리우며 집 안의 풍경을 다채롭게 한다. 중정은 1층 외벽 마감재인 '스토'의 거친 질감이 두드러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2층의 무거운 돌을 안정감 있게 받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질감이 있는 재료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재료는 다르지만 유사한 색을 써 1, 2층의 통일감은 유지했다. 중정은 고양이들을 위한 안전한 외부 공간이기도 하다. 고양이들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담장의 아랫 부분을 살짝 들어 올리되, 나갈 수 없도록 투명한 유리로 막았다.

반쯤만 해가 들어오는 북향의 테라스는 생각 외로 장점이 많은 외부 공간이다. 이용 빈도가 중정보다 오히려 높다. 햇빛이 달갑지만은 않은 여름에 아이는 그늘 아래 설치한 간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부부는 태양을 피해 놓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좋은 점은 또 있다. 북쪽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산은 해를 받는 남쪽 면이라 낮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가족은 맑은 날 테라스에 서서 "LED 조명이 켜진 듯한 산"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삶에 맞춘 공간에 산다는 것

건축주는 집 짓기에 오랜 공을 들였다. 결혼 후 30평, 60평, 25평 단독주택 3곳에 살아 보며 가족에게 필요한 공간을 고민했고, 땅을 찾기까지도 3년 반이 걸렸다. 집을 설명할 때 "열심히 지은 집"이란 말을 붙이는 배경이다.

"첫 집이 북향이었는데 너무 추웠거든요. 그래서 정남향의 따뜻한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60평대 집에 살았을 때는 1층에 주차하고 2층으로 올라가야 생활 공간이 나왔는데 너무 불편해서 동선이 편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잔디가 많은 곳에도 살아봤는데 풀을 감당할 수 없더라고요. 관리가 쉬운 집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40평대 집을 지은 것도 50평 이상은 가족에게 '너무 크다'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짓는 동안 살았던 9평 집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도망가는 사건도 벌어졌다. 고양이 탐정을 불러 겨우 찾았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자기에 맞는 '적정 평수'에 오자 한결 여유로워졌다. 건축주는 "환경이 마음에 영향을 많이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집 짓기는 "복잡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 해볼 만한 "1년간의 여행"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이들은 평면은 물론이고 중정의 나무 한 그루까지 취향에, 삶에 맞춤한 집에 살고 있다. 사는 이에 맞는 집에 살아 좋은 점은 거창하지 않다. "가장 좋은 건 각각이 우리가 원했던 공간이기 때문에 편하다는 거죠. 전에는 공간에 맞춰 살았던 거지 저희가 설계한 게 아니었잖아요. 목적이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게 집 기초 공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굳이 집 밖으로 나가야 될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만족스럽습니다."

송옥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