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압박에 정치범들을 석방하기 시작한 미얀마 쿠데타 군부가 시꺼먼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풀어준 민주화 운동가들을 몰래 다시 체포하는가 하면, 주요 활동가들을 석방 명단에서 슬그머니 빼는 등 꼼수를 부린 것이다.
20일 미얀마 나우 등 현지매체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만달레이 경찰은 전날 석방된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소속 르윈 마웅마웅 하원의원 등 NLD 핵심 관계자 11명을 같은 날 저녁 체포했다. 지난 8개월 동안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들이 반역을 선동했다는 이유에서다. 비슷한 시간, 양곤 등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28명의 활동가들도 가족들과 재회의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교도소 문 앞에서 다시 끌려 들어갔다.
군부의 꼼수는 석방 명단 조작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당초 군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반군부 운동을 벌인) 정치범들을 풀어주겠다"며 1,316명의 기결수와 4,320명의 미기소 구금 인원의 석방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날까지 석방된 인원은 200여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군부는 미국 국적의 대니 펜스터 '프론티어 미얀마' 편집주간과 주요 민주화 운동가들을 슬그머니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석방 규모를 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풀려난 인원들은 대부분 반군부 시위 단순 참가자들이다. 유명 코미디언 마웅 뚜라 등 소수의 연예인들도 석방됐으나, 이들은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현지에선 시민 불복종 운동(CDM) 참여 혐의를 받던 일부 의료진의 석방 역시 방역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자구책이었을 뿐, 민주진영과의 진심 어린 화해를 뜻하는 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짧은 '정치 쇼' 이후 군부가 다시 시민들을 불법으로 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APP는 지난 2월 쿠데타 이후 시민들의 불법 체포 현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인권단체다.
AAPP는 이날 성명을 내고 "거세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을 방어하기 위해 군부가 '정치범 석방'이라는 술수를 부린 것뿐"이라며 "군부는 단순 석방이 아니라 고문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APP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미얀마 전국의 교도소에는 아직 7,190명의 시민이 구금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