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고의 방치는 살인"… 기소 위기까지 처한 '사면초가' 브라질 대통령

입력
2021.10.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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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조사위, 보우소나루 대통령 기소 권고
보고서 "무모한 집단 면역론 탓 대거 사망"
'친정부' 성향 하원·검찰 문턱 넘긴 힘들 듯
기소 피해도 내년 재선 가능성 더 희박해져

‘남미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66) 브라질 대통령의 사면초가 상황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끝없는 지지율 추락, 멈추지 않는 탄핵 움직임에 이어, 이번에는 살인죄로 기소될 위기에까지 직면했다. 누적 사망자 수가 60만 명에 달할 만큼 극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과 관련, “정부가 무모한 ‘집단 면역론’만 들먹이고 대응에는 손을 놓아 대규모 사망 사태가 초래됐다”고 의회가 형사처벌을 권고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피고인 신세로 법정에 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통해 그가 재선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19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브라질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6개월째 조사해 온 상원 국정조사위원회는 이날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살인과 대량 학살, 사문서 위조 등 13가지 혐의를 적용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1,078쪽짜리 보고서에는 ‘대통령이 보건·방역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불분명한 집단 면역에 매달린 탓에 60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망자 절반은 행정부의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포함됐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지난해 제약사들의 백신 공급 제안을 거부한 점 역시 사실상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게 위원회의 지적이다. 보고서는 “대통령의 행동은 자연 감염을 통한 집단면역 이론과 치료제 존재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됐다”며 “백신마저 없었다면 사망률이 성층권까지 치솟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브라질의 코로나19 사망자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 조치를 거부해 왔다. 오히려 많은 인원이 모이는 집회와 시위를 장려했다. 본인이 공공장소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방역 수칙을 어기는 일도 잦았다. ‘백신 불신’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바이러스 위험성을 폄하하고, 하이드록시클로로퀸처럼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치료제 띄우기에만 혈안이 돼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위원회는 또, 정계에 몸담고 있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아들 3명을 비롯, 전·현직 정부 당국자 69명의 기소도 함께 권고했다.

다만 사법처리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일단 의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현직 대통령 기소를 위해선 상원뿐 아니라 하원의 승인도 필수적인데, 현재 하원은 여당이 장악한 상태다. 보고서가 채택된다 해도 연방검찰의 ‘벽’이 있다. 아우구스토 아라스 검찰총장은 30일 이내에 소추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 역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현지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실제 기소로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며 “(의회의 기소 권고는) 브라질의 감염병 상황을 가볍게 여긴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분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기소를 피해도 보우소나루 대통령 앞은 첩첩산중이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 백신 구매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등으로 그의 인기는 바닥을 쳤다. 의회에는 ‘탄핵 요구서’가 130건 넘게 쌓여 있다. 탄핵 추진 열쇠를 쥔 하원의장이 반대 의사를 공개 표명했지만,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反)정부 시위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44%)의 절반(23%) 수준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보고서는 지지율이 사상 최저인 보우소나루의 입지에 심각하고 지속적인 정치적 손상을 입혔다”고 분석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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