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카니 와 이래 눈물이 나노."
경북 포항지진으로 이재민이 된 이순오(75)씨는 19일 오전 임시구호소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실내체육관 '14-9' 텐트 안에서 홀로 앉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임시구호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전날 몇 안 되는 가재도구를 싹 치운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찜질팩을 꼭 껴안고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씨는 “한겨울 텐트 안이 너무 추울 때 꼭 껴안고 잤던 게 바로 찜질팩”이라며 “여기를 벗어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서럽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 자꾸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재민 전은영(46)씨는 "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다 보니 군대에 간 큰 아들이 휴가를 나와도 제대로 챙겨줄 수 없었다"면서 "지진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 지진으로 집이 부서져 흥해읍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텐트에서 숙식을 해온 이재민들이 1,435일 만에 체육관을 떠나게 됐다. 차디찬 체육관 바닥에서 지난한 삶을 이어온 이들은 진앙인 흥해읍에 있는 한미장관맨션 아파트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지진으로 벽이 갈라지고 천장에서 물이 새는 피해를 입었지만, 정밀 안전진단에서 ‘약간 수리가 필요한 정도’인 C등급을 받아 임시 주거시설을 제공받지 못했고, 임시구호소를 벗어날 수 없었다. 임대주택 거주 자격을 얻기 위해선 수리가 불가한 '전파' 판정이 나야 한다.
상황은 지난달 24일 반전했다. 국무총리 소속 포항지진 피해구제 심의위원회가 ‘수리불가’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라 지원금을 받아 새 거처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 심의위원회는 지진피해를 입은 만큼 실질적인 구제를 하기 위해 제정된 포항지진 특별법에 따라 구성됐다.
포항지진이 일어나고 흥해읍 실내체육관에 설치된 텐트는 221개. 한때 1,180명이 머물렀던 체육관에서 철거 당일까지 텐트에서 잠을 잔 이재민은 9명이다. 이들은 지진으로 겪은 고충을 이야기하고 함께 이부자리 등을 치우며 임시구호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최경희 한미장관맨션 비상대책위원장은 "포항시, 시의회, 국회의원, 경북도, 포항 11·15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 피해구제심의위원회 등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다섯 번 가을을 맞기 전에 해결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임시구호소가 문을 닫으면서 지난 4년간 이재민들의 하루 세 끼 식사와 각종 편의를 제공해 온 포항시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시는 해마다 2억 원의 예산을 들여 냉난방과 세탁, 급식 등의 주거 지원을 해 왔다.
이강덕 포항시장 등은 이날 오전 11시 임시구호소 운영을 마무리하는 간단한 행사를 연 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텐트와 집기를 치웠다.
이 시장은 "지진이라는 위기를 딛고 포항이 새롭게 도약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포항 북구)도 "오랜 기간 주민들이 고생했다"며 "재건축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날까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 아파트 재건축을 결정함에 따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또 임시구호소 운영이 종료된 흥해실내체육관을 보수해 본래 용도인 주민 체육시설로 사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