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원도 남부에 자리한 영월군의 동부 지역을 살피려 한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나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으로 답사를 한다. 하지만 강원도 산간지역이 도저히 대중교통으로 답사할 수 없는 지역임은 독자분들도 익히 아실 터. 그래서 이번만큼은 평소에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는 답사팀과 함께 자가용으로 길을 나섰다.
석탄·텅스텐·석회·철광석 등을 채굴하던 광산이 강원도 곳곳에서 운영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기에는 광산 배후에 형성된 광산촌들 사이를 버스 노선이 촘촘히 이어주었다. 하지만 특히 탄광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뒤로, 이들 광산촌은 소멸하거나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자연히 버스 운행도 중단되거나 하루 몇 차례로 줄어들었다.
이들 마을을 잇던 비포장도로나 산길도 사라져 버린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두 곳의 광산촌이 지도에서는 서로 가까이 있더라도, 실제로는 산을 크게 휘감아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답사의 출발점인 정선군 고한읍 박심리와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가 그렇다.
한때는 번성하던 광산촌인 박심리는 현재 리조트로 개발되어 마을이 소멸했다. 이곳에 한때 탄광촌이 번성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리조트 입구에 세워진 박심리 마을비석뿐이다. 박심리 탄광촌이 사라지다보니, 이곳에서 산너머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의 상동광업소로 이어지는 좁은 길도 사실상 폐로가 되어 있다.
상동광업소는, 중장년층에게는 '중석(重石)'이라는 단어로 더 익숙할 텅스텐을 채굴하던 곳이다. 한동안 폐광 상태였던 상동광업소는, 최근 들어 몇몇 업체가 영업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이곳에는 예전의 시설물과 채굴을 재개한 이후의 시설이 혼재되어 두 시기의 시층(時層)을 이루고 있다. "요즘에는 텅스텐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재개광을 준비하는 투자자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늘고 있어 또 다른 신화에 대한 지역주민의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있다."(2011년 9월 14일자 강원도민일보 '폐광지 산업문화유산을 살리자 2. 이것이 산업유산이다')
구래리 한쪽에 서 있는 '하늘 아래 첫 놀이터 - 꾸러기들'이라는 비석에 적혀있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성인이 되어 대부분 타지로 나갔을 터이다. 다시 한번 텅스텐을 채광하려 하는 이들 업체들의 시도가 성공하여, 상동광업소의 광산촌인 구래리와 그 남쪽에 자리한 상동읍사무소 주변의 예전 활기가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상동광업소의 배후지인 구래리와 그 남쪽의 상동읍사무소 주변은 이처럼 어느 정도 마을로서의 규모를 남기고는 있다. 하지만 영월군 내의 다른 광산촌들은 이보다 사정이 나쁘다. 석탄을 캐던 구강동 마을은 소멸했고, 옥동광업소에 의존해서 번성하던 모운동, 그리고 예밀리 등도 거의 소멸 직전이다.
옥동광업소에는 광산 입구가 한 곳 남아있고, 그 옆에는 광부들이 몸을 씻던 목욕탕 건물이 남아있다. 이 목욕탕 주변은 현재 캠프장으로 정비되고 있어서 비교적 접근하기 쉽다. 이곳에 가시게 되면, "머릿돌. 이 건물은 광산 근로자를 위하여 정부의 지원으로 건립된 것이니 다함께 고마운 마음으로 이용합시다. 동력자원부. 1987년 11월 3일"이라고 적혀있는 목욕탕 건물의 머릿돌도 꼭 챙겨보시기를.
예전에 별표연탄을 생산하던 옥동광업소의 배후지인 모운동의 주민들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2011년 9월 28일자 강원도민일보 '폐광지 산업문화유산을 살리자 4. 산업유산 관광루트를 찾아서'), 예밀리의 주민들은 30년 전에 세워진 탄광 사택을 알뜰히 가꾸며 조용히 삶을 영위하는 길을 택하신 듯했다. "본 단지는 광산 근로자를 위하여 정부의 지원으로 건립된 것이니 다함께 고마운 마음으로 이용합시다. 동력자원부. 1986.10.30"이라고 적힌 사택 머릿돌을 촬영하던 우리를 보고는, 동네의 꼬마 아이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답례하면서, 한때의 번영 뒤에 규모가 줄어든 이 마을에서 조용히 삶을 꾸리는 주민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옥동광업소에서 채굴된 석탄은 철도로 모운동을 통과해, 예밀리의 서쪽에서부터는 철도가 아닌 삭도(索道) 즉 케이블로 태백선 석항역까지 운반되었다. 철도 노선이 끝나고 삭도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삭도'라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옆에는 삭도를 출발시키던 시설물이 남아있다. 주민들은 이 시설물이 노후화되었으므로 철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2020년 11월 16일자 강원도민일보 '영월 옛 옥동광업소 폐삭도시설 철거해야'). 지난 여름에 철거 작업이 시작된다는 소문을 듣고는 서둘러 답사를 간 것인데, 내가 답사한 9월 현재까지는 아직 시설물이 남아있었다. 강원도의 산업 유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철거가 시작되기 전에, 그리고 강원도 산길에 눈이 쌓이기 전에 서둘러 가보실 것을 권한다.
옥동광업소에서 삭도로 운반된 석탄은, 영월군 중동면 석항리에 자리한 태백선 석항역 동쪽 저탄장에 집결했다. 상동광업소의 텅스텐은 역 서쪽의 대한중석하역소에 쌓였다. 현재 중석하역소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 반면, 저탄장은 여전히 현역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석항역 저탄장도 머지않아 사용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2021년 8월 31일자 이뉴스투데이 '정선군, 석항 무연탄 저탄장에 1400억 규모 민자 유치').ㅏㅏㅏ
강원도 남부에서 채굴된 석탄과 텅스텐이 외부로 운반되는 관문으로서 번성하던 석항역의 역전마을은, 이들 광물의 채굴이 줄어들고 석항역이 여객 취급을 중단하면서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역 앞에는 열차 차량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운영되고 있고 그 주변에 벽화를 그리는 등, 지역 주민들은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이 석항역에 내릴 수 없다보니, 자가용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
마을이 축소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우체국이 올해 10월 말을 끝으로 우편 취급을 중단하기로 하자,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우체국과 석항역 삼거리 곳곳에 플래카드를 내걸어 두었다. '김규창 선덕 불망비. 1974.5.25. 석항 주민 일동'이라 적힌 비석이 1995년 지도에는 마을 외곽의 서쪽에 서 있던 것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현재는 석항역 삼거리로 옮겨져 있다. 이런 종류의 비석은 마을 초입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비석의 위치가 석항역에 좀 더 가까운 삼거리로 옮겨진 것은 마을의 규모가 축소되었음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20세기 중후기에 한반도 곳곳에서 번성하던 광산촌은 현재 소멸했거나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석항역에서 그 진행과정의 한 컷을 목격한 것 같아 쓸쓸해졌다.
이 글의 마지막에 식당을 한 곳 소개한다. 석항역 역전마을이 번성하던 시절에 여관으로 이용되던 옛 기와집이 현재 역 근처에서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습적으로 수해 피해를 입던 석항리 주민들을 위해 조성된 수해주택과 아울러, 한때 번성하던 석항역 역전마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건물이다. 석항역 앞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예정이 있는 독자분들께, 이 식당의 영업시간을 미리 확인했다가 방문해보실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