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유명 피부과 의원이 고객들이 선불한 시술료를 돌려주지 않은 채 돌연 폐업한 가운데, 해당 병원 안팎에선 원장 부부가 몇 달 전부터 수상한 행적을 보였다면서 폐업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원장 남편은 올해 5월 병원이 입주한 건물 소유주를 협박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신사동에 위치한 A의원은 지난달 8일 고객들에게 안내 메시지를 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폐업하게 됐다"며 "5분 거리에 2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니 이곳에서 관리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알렸다. 이 병원은 이틀 뒤 관할 구청에 폐업 신고를 마쳤으나, 한 달이 넘도록 2호점 개점 소식은 없는 상태다. 또 관할 보건소에 따르면 이 의원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적이 없다. 병원 측이 폐업 이유를 거짓으로 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주변에서는 원장 부부가 폐업 몇 달 전 자신들이 빌린 공간을 재임대하는 이른바 '전대'를 허락해달라고 건물주에게 요구하며 횡포를 부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대는 기존 세입자가 새로운 세입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것으로, 건물주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A의원 원장의 남편이라고 밝힌 B씨가 5월쯤 4명에게 전대를 하고 싶다며 건물주에게 수차례 요구했고, 건물주가 사업 목적을 의심해 거절하자 욕설과 협박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B씨는 건물주와 대화하던 도중 방송 출연 경력이 있는 건물주 딸의 실명을 언급하며 "네 딸이 ○○○라면서? 곧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거야" 등 협박성 발언을 했다가 고소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고 7월 검찰에 송치됐다.
B씨는 8월에도 수상한 행적을 보였다. 한밤중 A의원에 침입해 출입문을 파손하고 레이저 치료기 등 8억 원 상당의 의료기기를 절도하려고 한 혐의(야간건조물침입절도미수 등)로 체포된 것이다. 당시 B씨는 원장과 합의해 형사처벌을 면했다. 두 사람은 이 사건 전후로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의원 원장은 업계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인사다. 하지만 병원 사정을 아는 이들은 "B씨가 등장한 후 병원 운영은 전적으로 B씨가 담당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B씨가 자신의 요구를 물리치고 고소까지 한 건물주에게 타격을 줄 심산으로 성업 중이던 병원 문을 닫았다는 추측도 나온다. 원장은 폐업 이후 외부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선불금을 떼일 상황에 처한 고객 100여 명이 원장을 상대로 사기 피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B씨는 병원 폐업은 코로나가 아닌 건물주와의 갈등과 관련있다면서 '거짓 해명' 의혹을 인정했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불공정한 계약 등 건물주 갑질이 심해 어쩔 수 없이 임시 폐업을 했지만, 올 하반기 내에 2호점을 열 예정"이라며 "아내(원장)는 트라우마가 심각해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맞다"며 "구체적인 사정을 고객들에게 설명하기 힘들어 '팬데믹 상황으로 폐업한다'는 취지로 안내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남구보건소는 전날 A의원 원장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폐업이나 1개월 이상 휴업을 할 때 30일 내로 관할 시·군·구청장에게 신고하지 않으면 의료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