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이내 배송 등을 내건 '퀵커머스'가 골목상권에 위협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영향분석에 착수했다. 정부는 규제만을 염두에 둔 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유통기업뿐 아니라 물류·플랫폼기업까지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퀵커머스 시장에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8일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유통산업의 디지털 전환 대응을 위한 연구 용역' 추진계획서에 따르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퀵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산업이 시장에 미칠 영향분석에 착수했다. 퀵커머스로 골목상권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다.
산업부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늘어나며 급성장한 온라인 유통산업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해 관리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퀵커머스 등이 골목상권에 미치는 실증분석도 이뤄진다.
퀵커머스는 익일 배송을 넘어 시간·분 단위로 배송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유통업계는 앞다퉈 도심에 기존 물류센터보다 작은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를 마련 중이고, 오프라인 기반 대기업들도 편의점 등을 물류센터로 활용해 빠른 배송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 또 플랫폼과 제휴하거나 자체 배달망을 확대해 배달 네트워크도 강화했다. 배달의민족 B마트, 쿠팡이츠마트, GS25 우리동네 딜리버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롯데쇼핑 등도 뛰어들었다.
문제는 퀵커머스가 취급하는 품목이 기존 슈퍼마켓이나 식료품점 제품과 대부분 겹친다는 점이다. 퀵커머스 시장이 커질수록 표면적으로는 골목상권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관계다. 2019년 4분기 출범한 배민의 B마트는 지난해 1,477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취급 품목을 5,000개로 확대하는 등 1년 만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반면 인근 소상공인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대책위에 따르면, B마트 출범 초기 인근 상권 소상공인들의 매출은 시간대별로 10%가량 감소했고 현재는 그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
구조적으로도 퀵커머스는 골목상권과 공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배달 플랫폼들은 배달서비스를 통해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중개하는 모델이지만, 퀵커머스는 유통대기업의 물건을 직접 배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통업체들은 사업 모델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B마트는 비싼 배달비를 주고서라도 즉시 받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라며 "동네 편의점, 마트의 수요를 잠식하는 게 아니라 신규 서비스를 창출하는 서비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퀵커머스 초기부터 골목시장 침해 논란이 일자 결국 정부가 중재에 나섰다. 산업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은 내년 초 완료돼 후속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다.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우선 영향평가가 부정적으로 나오는 경우다. 이 경우 배민, 쿠팡의 MFC는 SSM과 마찬가지로 상권영향평가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하고 의무휴업이나 영업시간 제한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문제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퀵커머스 시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업계에선 퀵커머스 시장이 2025년까지 최소 5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입법기관과 전문가 모두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이동주 의원은 "퀵커머스는 전자상거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특정 권역에서의 근거리 배송'이란 점에서 물류창고업이 아닌 유통소매업으로 분류돼 제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SSM과 마찬가지로 출점 시 상권영향평가를 거친 뒤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유통학회장인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퀵커머스는 혁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존 골목상권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업 모델"이라며 "퀵커머스 플랫폼이 소상공인 상권까지 위협한다면 이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겠지만, 소상공인도 결국 이들을 이용해 생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묘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