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골목길, 다닥다닥 붙어 있는 통거울,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이의 관음적 시선. 성 구매자를 유인하기 위해 업소 바깥에서 여성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쇼윈도로 만들었던 성매매 업소 '유리방'은 이렇게 재현됐다.
유리방이 모여있는 서울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 중 하나로 꼽혔던 강동구 천호동 423번지는 천호 뉴타운 사업으로 마지막 철거 구역인 천호 3구역만을 남겨 두고 있다. 이에 천호동의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해 온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이 이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모습을 그대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성매매 여성의 탈출을 막기 위해 문 앞에 달아 놓았던 폐쇄회로(CC)TV가 눈에 띄었다. 피해 여성들은 '정화 삼촌'이라 불리는 관리인의 감시 아래 쉬지 않고 손님을 받아야 했다.
정화 삼촌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성 구매 남성이 있으면 해결해주고, 성매매 여성들을 통제하기도 했다. 탈출에 성공해 업주와 이들 여성 사이의 부당 계약이 무효가 되면 업소에도 타격이 갈뿐더러 다른 피해 여성들도 동요할 수 있기 때문에 치밀한 감시는 24시간 내내 이어졌다.
소냐의집은 성 착취가 일어났던 역사를 기록하고 공유해야 성매매 집결지 때문에 생긴 상처들이 제대로 치유될 수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기록화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 역시 이 기록화 사업의 하나. 1963~2020년 57년 동안 강동구 천호동 423번지에서 일어난 성착취의 역사를 재현물, 영상 등을 통해 촘촘히 담아냈다.
①텍사스촌을 사진에 담아 온 시민 기록가들 ②예술치료 사회적기업 '앨리스와 토끼'와 함께했던 '오호프로덕션' 작가들 ③강동구 사회적기업 협의회도 힘을 보탰다.
유리방 골목을 거울을 통해 보여준 임준성 작가는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천호동 일을 잘 모르더라"며 "피해 여성들이 겪은 고통이 남의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이어 "거울을 통해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이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자신의 일처럼 느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감시가 살벌해도 미용실이나 편의점에라도 간다는 핑계를 대고 그곳을 빠져나올 구실을 마련할 수는 없었을까. 기자의 질문에 전시 담당자는 '외딴섬'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텍사스촌에서 여성은 바깥으로 나갈 수 없고, 성구매 남성만 오갈 수 있어요. 이 안에 미용실, 슈퍼마켓, 목욕탕, 화장품 가게, 홀복 판매점이 다 있어요. 이 가게 주인들과 업소 주인은 결탁돼 있고 감시하는 눈초리가 한두 개가 아니기에 평생 밖으로 나갈 수 없었죠."
강동구 천호동 423번지가 하나의 외딴섬이라면, 업소는 이의 축소판이었다. 한 평 남짓의 공간에서 여성들은 도움을 청할 곳 없이 성 구매 남성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 줘야 했다.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의 김효정 사회복지사는 "(남성들은) 돈으로 시간을 샀다고 생각해 그 시간만큼은 노예로 부릴 수 있다는 심리가 폭력적 행위로 이어지기도 했다"며 "'언니들'은 가학적 성행위의 도구로 여겨졌고, 그런 일상이 매일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언니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일컫는 말. 이들은 폭력적 성행위에 자존감을 잃어 가는 것은 물론 이곳에서 이름도 잊은 채 살아갔다. 인신매매와 고리대금업이 횡행하던 1980~90년대, 조폭들은 길거리에서 미성년 여성을 납치하거나 일을 하면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속임수를 통해 여성들을 이곳에 들여놓았다.
이후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당국은 텍사스촌 등 집결지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고 사회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탈출 후 불법 대부 계약을 무효로 하는 소송에서 이겼다고 해도, 직업 훈련을 받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업주들은 처음부터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을 했다고 한다. 김효정 복지사는 "대부분 집안 사정이 안정적이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힘든 이들이었기 때문에 약한 심리를 파고든다"며 업주 스스로를 부모처럼 부르도록 했다고 전했다.
업주가 여성인 경우 엄마라 부르게 하고, 피해 여성의 생일날에는 미역국도 끓여 줬다. 또 "상담소, 쉼터 같은 곳은 네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들 것", "이 세상 밖으로 나가면 모두가 너를 손가락질할 것"이라는 말도 반복했다. 피해 여성 대부분이 오갈 데 없는 신세라는 점을 이용해 통제하고, 심리적으로도 스스로를 이 공간에 묶어 두도록 했다.
2000년대 초반, 강동구 천호동 텍사스촌 일대는 서울시의 강남·북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한 뉴타운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강동구청은 천호시장과 텍사스촌을 포함한 천호동을 뉴타운 사업 지구 대상지로 신청하였고, 2003년 11월에 뉴타운 지구 지정승인을 받았다.
이후 보상금을 두고 업주들과 건물주들의 성매매 여성을 볼모로 한 부동산 게임이 시작됐다. 일부 업주와 건물주는 정비사업조합으로부터 보상금, 이주비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철거를 않고 버텼다. 결국 텍사스촌에서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벗어날 수 없었던 여성들은 화를 입고 말았다.
2018년 12월 22일 오전, 철거하지 않은 성매매 업소 건물에서 불이 났고, 그 안에 있던 6명 중 3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소냐의집에 따르면, 사건 직후 3명이 사망했고 이후 한 피해자가 추가적으로 기존 병세 악화에 시달리다 명을 달리했다. 불법 구역이었기 때문에 현장에는 제대로 된 소화기 하나 없었다. 사망 여성들은 밤낮이 바뀐 생활 패턴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자느라 미처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사고 이후 천호 재개발 사업은 속도가 붙었다. 여론이 안 좋아졌고, 버티고 있던 업주들 역시 형사소송 건으로 법정에 불려갔다. 이후 천호 재정비 3구역을 제외한 1, 2구역에선 천호시장과 동서울시장이 문을 닫고 재건축을 시작했다. 이제 천호동 텍사스촌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 속으로 보내는 것이 맞는가. 이 질문이 아카이브 전시를 열도록 만들었다. 공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버림 받은 공간, 화재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여성이 직접 쓴 글귀가 텍사스촌에서의 기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018. 5. 12. 토요일. 아주 슬프게 비가 온다. 여기까지 오기가 참 힘겨웠다.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먼 미래에 희망이란 두 글자, 또 사랑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남들은 하루 단위로 지내는데 이 경계가 없는 사람은 그저 일주일 단위로 살게 된다. 이 작은 몸 상처투성이, 이젠 힘이 없다. 그냥 놓아 버리고 싶다."
천호 재정비 1, 2, 3구역 중 아직 철거되지 않은 채 남은 3구역에 가봤다. 꺼지지 않던 홍등가의 불빛은 이제 없다. "월세 옥탑방 500/20. 풀옵션"이라는 서울 주거 시세에 맞지 않는 홍보물도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했다. 통유리와 커튼, 조명등과 CCTV가 있던 자리는 눈을 의심케 했던 전시물들이 얼마나 실제 모습을 잘 담았는지를 현장에 와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 입간판으로 시작되는 텍사스촌의 입구 역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기자는 용기를 내 그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쓰레기가 가득했고, 고양이가 그 속을 뒤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이자 삶의 장소, 아니 삶을 꿈꿀 수 없었던 공간. 멈춰 버린 이 공간을 살다 간 여성들을 떠올려 보았다.
재건축이 한창인 1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재건축 가림막 뒤로, 흰색 페인트로 투박하게 '영지 머리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골목 속 즐비했던 편의시설들의 흔적도 엿보였다. 이 안에는 목욕탕, 미용실, 홀복 판매점, 슈퍼, 심지어 의원까지 있었다. 의원이란 성매매 여성들이 일을 쉴 수 없도록 불법 주사를 놔주는 곳이었다.
소냐의집 아카이브북에 따르면 "예뻐져야 돈 많이 벌고 이곳을 나가지 않겠느냐"는 말로 미용이나 홀복 구매에 돈을 쓰게끔 유도했다고 한다. 자연히 이 여성들에게는 돈을 빨리 갚지 못하게 되는 상황과 동시에 굳이 골목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삶의 방식이 굳어졌다. 이들에게는 이곳이 세상의 전부였던 셈이다.
주변 상인들은 후련하면서도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천호동의 이미지가 좋아질 것을 기대하면서도 몇 년째 장사가 안 되는 상황은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
천호시장 근처에서 이불 장사 20년을 하다 텍사스촌에 손님들의 발길이 줄면서 4년 전부터 냉면 가게를 운영해왔다는 최모(69)씨는 "예전에는 '색시골목(텍사스촌을 이르는 말)'에서 이불을 많이 사가니까 장사가 잘됐다"며 호황기를 누리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래도 없어진 게 낫다. 예전에는 천호동 산다 그러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는 등 이미지가 안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탁소를 32년째 운영해 온 구모(67)씨 역시 "20년 전 텍사스촌이 유명했던 시절에는 집창촌에서 옷더미들을 많이 사가니까 천호시장도 장사가 잘됐다"며 "천호시장이 사라지고 난 후 먹고살 길이 걱정"이라 전했다.
택시기사 권모씨는 "남자들끼리 술 먹고 한 번씩 가던 유명한 곳이지 않느냐"며 "40년 전에는 '423 가요' 하는 외부 손님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제는 옛일이다. 주민들은 반기고 상인들은 침울해한다"며 "새 건물 들어서고 해야 천호동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서울의 3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렸던 강동구 천호동, 성북구 하월곡동, 영등포구 영등포동 세 곳 중 천호동이 가장 먼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직 철거가 진행되지 않은 3구역을 빼면 천호동 텍사스촌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된다. 공간이 사라진 이 시점에서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 나갈 수 있을까.
전시회장에서 만난 강동구 주민 60대 임모씨의 말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