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18일 경기도 국감은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여당 대선 후보를 상대로 한 초유의 검증대였다. 이재명으로서는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건곤일척의 무대였고, 야당은 ‘적장(敵將)’의 목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예상대로 국감은 ‘이재명 게이트’ 대 ‘국민의힘 게이트’의 프레임 싸움이었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개발 의혹의 몸통은 이재명”이라는 레토릭을 반복했고, 이 지사는 “정작 돈이 흘러간 곳은 국민의힘 관련 인사들”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어차피 양쪽 다 국감장을 진실 규명보다는 정치 공세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심산이 컸던 터다.
대장동 의혹의 가장 큰 쟁점은 민간사업자의 막대한 초과수익을 왜 환수하지 못했는가다. 이 지사는 “그들이 나눠 먹는 건 알 수도 없었고 가르쳐주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설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측근 논란은 그간의 말싸움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애초 측근이란 개념 자체가 주관적인 탓에 일도양단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날 공세의 칼자루는 야당이 쥐었지만 판세가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애초 민주당 의원이 두 배에 가까운 터라 화력에 차이가 나는 게 당연했다. 그런 지형을 극복할 신형 무기나 허를 찌르는 전술 없이 맨손으로 나온 국민의힘은 허공에 대포만 쏘아 대는 격이었다. 고함과 삿대질, 호통만으로 제압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굿판만 깔아준 채 되치기를 당했던 당시 모습 그대로다.
‘대장동 혈투’의 승부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TV로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은 나름의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 지사가 진실의 장막 뒤에 숨으려 했는지, 야당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무리한 공세를 폈는지 감을 잡지 않았을까 싶다. 불신과 의혹이 커졌을 수도 있고, 확신과 신뢰가 굳어졌을 수도 있다. 민심이 길을 내고 모아져 여론은 형성되기 마련이다.
어차피 국감에서 진실이 밝혀질 리는 없고 결국 수사로 가려질 수밖에 없다. 원주민과 입주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누구에게 갔는지가 드러날 거고, 민관 결합개발의 타당성도 확인될 터다. 이 지사도 수사의 칼날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이 지사의 역할과 행위는 대선 유력 주자로서의 결격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할 것이다. 그 결과를 지금 예단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분명한 건 대장동 의혹 자체가 이 지사에게 불리한 사안이라는 점이다. “공공개발을 국민의힘이 막았다”는 항변에도 악취가 진동할 당시 최고관리자요 책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민간에 과도한 수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왜 노력하지 않았는지, 인사권자로서 사람을 잘못 쓴 도의적 책임은 면할 길이 없다. 물론 이 지사가 이 난장판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위기가 대반전의 기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고개를 숙이고 조아려야 한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날 국감은 이 지사로서는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을 것이다. 개인의 일탈인지, 아니면 조직적 불법인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증인석에 앉아 있으면서 우리 사회 기득권 부패의 실상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이재명이 살아남는다면 첫 과제는 분명해졌다. 선진국형 부패인 ‘엘리트 부패 카르텔’을 뿌리 뽑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과 ‘정의’의 시대정신을 말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