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증명하듯, 국내 최대 미술 장터 ‘키아프(KIAFㆍ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5일간 650억 원어치가 팔렸다. 관람객 수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8일 키아프를 주최한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13~17일 진행된 ‘키아프 서울 2021’에 2019년 대비 7% 이상 증가한 8만8,000여 명이 다녀갔고, 총 650억 원 상당의 작품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화랑협회는 “매출의 50%가량이 VVIP 개막 첫날인 13일에 이뤄졌으며, 관람객이 몰려 입장(내부 순간 허용 인원 3,063명)하기 위해 대기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20·30대 새로운 고객층이 대거 유입된 게 특징이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40대 후반에서 50대까지가 고객의 주축이었다면, 2030 등 새로운 고객들이 많이 보였다”며 “유명 작가 작품을 보려는 대기자가 많아지면서,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500만 원 이하의 작품 중에는 판매를 알리는 ‘빨간 딱지’가 붙은 경우가 많았는데, 구매자 중 상당수가 젊은 층이었다는 후문이다. 한 예로 대구 소재 키다리갤러리가 내건 100만 원 안팎의 최형길 작가 작품은 20여 점이 모두 판매됐다. 김민석 키다리갤러리 대표는 “전시 전 온라인으로 예약이 다 마감돼 작가가 가지고 있던 작품을 받아 현장에서 판매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의 모습을 다룬 작품인데, 구매자 가운데 2030세대가 많았다”고 말했다.
고가의 수집 아이템으로 떠오른 운동화를 그린 차영석 작가의 작품(한 점당 300만 원) 앞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벽에 걸린 30개가 모두 팔리고 추가로 20여 점이 더 판매되는 등 총 50여 점이 판매됐다. 차영석 작가의 작품을 내건 이화익갤러리의 이화익 대표는 “구매 연령층이 확실히 다양해졌다”며 “젊은층의 경우 과거엔 구매가 아닌 구경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실제 구매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부스는 있지만 현장에서 작품을 팔지 않는 독특한 갤러리도 있었다. 갤러리 신라는 벽에 작품을 거는 대신 ‘아트페어 기간 중 갤러리 신라 부스는 닫혀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써 붙였다. ‘보이지 않는 시각예술’ ‘시각예술의 상업성’ 등 미국 개념미술 작가 로버트 배리가 던진 질문을 하고자 한 것인데, 시장의 수요보다는 새로운 미적가치 창출에 보다 중점을 두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로버트 배리는 1969년 '전시 기간 동안 갤러리는 폐쇄됩니다'라는 초대장을 전달하고 전시 장소를 실제로 폐쇄해 전시 기간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한 실험적 시도를 한 바 있다. 굳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 자극이 일어날 필요가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관람자의 태도 또는 감정 형성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준엽 갤러리 신라 디렉터는 “보고 즐기고 느끼는 예술보다 ’아트 테크’ ‘아트 인베스트먼트(투자)’가 각광받는 시대에 시각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며 “해외 갤러리가 많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시장이 이만큼 성숙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부스는 글로벌 미술 전문지인 ‘아트뉴스’가 선정한 키아프 10대 부스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