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깡패

입력
2021.10.19 18:00
0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9년 6월 사과문 한 장을 발표한다. 검찰총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여러 자리를 빌려 과거 검찰의 잘못된 수사와 기소에 용서를 구해온 문 총장은 사과문에서 거듭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 향후 권한을 남용하거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 사과문은 그보다 4개월 앞선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과거사위는 1년여에 걸쳐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 용산 참사,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등을 재조사한 뒤 검찰의 부실 수사나 인권 침해가 있었다며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조사 대상 17개 사건 중에 국가정보원의 증거 조작으로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 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핵심 증거인 북한·중국 출입기록 조작 등으로 오히려 국정원 직원들이 처벌받은 사건이다.

□ 대법원이 최근 유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며 공소 기각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유씨가 간첩 혐의 무죄 판결을 받은 2015년 즈음 검찰이 별건으로 그의 대북 송금을 문제 삼아 진행된 재판의 최종 결과로 사법부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첫 사례다. 대법원은 2010년 기소유예한 사건을 검찰이 다시 끄집어낸 점을 문제 삼았다. "어떠한 의도"로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했다"는 것이다.

□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을 지휘한 현 인천지검장에게 "피해자에게 사과할 의사가 없느냐"라는 질문이 여러 차례 나왔다. 검찰총장도 권한 남용을 반성했는데 이 검사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업무 처리에 유의하겠다"니 기가 막힌다.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고 말한 검사가 있었다. 그의 말대로 검사가 깡패 수준이 된 걸 딱하게 여기려다 고개를 젓고 말았다. 깡패는 두목이 머리 숙이면 부하들은 폴더폰 각도로 굽히는 시늉이라도 한다. 검찰이 정말 개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