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는 '엄마표 밥상'이 없다

입력
2021.10.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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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직업이 외교관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두루 살아 볼 기회가 있었다. 소위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종 모양'으로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는 반면, 후자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으로 양극화되어 중산층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런 교과서적 내용이 실제로 가서 살아 보면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고, 어떤 나라에 사느냐에 따라 현실 생활이 아주 달라진다.

후진국에서 저렴한 가사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부유층 여성들은 직업에 종사하든지 가정에서 자녀 출산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살림과 육아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 문화를 인식하지 못해서 생긴 해프닝도 있었다. 브라질 거주 시 우리 측에서 그곳 인사들을 초대한 모임이 있었는데, 우리 쪽 누군가 "김치를 맛보면 안주인의 요리 솜씨를 알 수 있는데, 브라질에도 살림 실력의 척도가 되는 음식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순간 브라질 사람 사이에 어색한 적막함이 흘렀고, 한 여성이 "그런 건 빈곤층에나…"라며 얼른 말을 얼버무렸다. 한국에서 가정주부의 요리를 칭찬하는 덕담이 브라질에서는 여성이 살림 담당자라는 '여성 무시'의 발언으로 들렸던 것이다.

서먹한 순간도 잠깐,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하게 변했고 한식과 더불어 대화가 무르익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 측 누군가가 옆에 앉아 있던 브라질인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지금 이 요리도 맛있지만,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이 너무 그립다"는 것이다. 이것도 우리에게 정말 익숙한 말이고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음에 틀림없다. 불러만 봐도 가슴 따뜻해지는 단어인 '엄마'와 어릴 적부터 먹어온 '엄마표' 밥상… 그런데 그 브라질인의 반응이 또 기가 막혔다. 그는 "엄마가 음식을 해준 적이 없어서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엄마들의 고된 가족 뒷바라지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여겨왔던 나는 그곳 엄마와 자식 간에 애정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엄마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정에 문제가 있다든지 가족 간에 불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엄마의 정성이 어쩌면 한국 중산층 가정의 전통적인 노동 분업과 한 푼이라도 아껴가며 의식주를 꾸려 가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나라들을 경험하고 내려지는 결론은 그래도 중산층이 두꺼운 사회가 건전하다는 사실이다. 후진국에서 소수의 부와 대다수의 빈곤이 엄격히 분리돼 계속 대물림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소득 불평등의 브라질을 'Italordan'(이탈리아와 요르단을 합친 나라라는 의미)으로 묘사하면서, 이에 반해 한국을 1950년에는 브라질보다 빈곤했지만 이제 국내총생산이 브라질의 2배이고 소득 불균형도 첨예하지 않은 건강한 사회로 평가하고 있다(2014년 6월호).

아울러 우리 엄마들이 가족을 위한 가사 노동을 최상의 미덕으로 여기고 살아왔을지라도, 지금 딸 가진 부모의 뒤치다꺼리와 함께 딸 본인들의 공부와 취업이 단지 '최고의 엄마'가 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여성들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고, 그 내용도 각자 스스로 판단하고 가족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김윤정 ‘국경을 초월하는 수다’ 저자ㆍ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