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내년 ‘거대한 실험’ 하나를 본격 시작한다. 자동차 종류를 불문하고, 차고지(주차장)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차량을 아예 구입할 수 없도록 하는, 국내 유일의 ‘차고지 증명제’가 시행된다. 제주 주택가에서도 일본처럼 ‘깨끗한’ 골목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주차공간을 확보한 주택이 몰린 지역과 그렇지 못한 원룸 밀집지, 저개발 지역의 부동산 격차를 심화시켜 다른 사회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제주도에 따르면 내년부터 제주도에서는 차종에 상관없이 차고지를 증명해야만 차량을 등록할 수 있는 차고지 증명제를 전면 시행한다. 이에 따라 제주에서는 차고지가 없으면 차량 구입이 아예 불가능하다. 또 이사 가는 곳의 주택도 주차 공간이 확보돼 있지 않을 경우 과태료 폭탄을 맞게 된다.
도 관계자는 “2007년 첫 시행 이후 15년 만에 소형, 경형 자동차도 차고지 증명 대상이 되는 전면적인 시행”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모든 승용차를 구입하거나 주소 이전 시 거주지 반경 1㎞ 이내 거리에 자기 차고지를 확보해야 한다. 새차 구입 시 차고지가 없으면 차량을 등록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매매업의 매매용 자동차, 차상위 계층 소유 최대 적재량 1톤 이하 화물자동차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차고지 증명제는 제주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1980년 ‘마이카’ 붐이 불기 시작하면서 앞서 주차난을 경험한 지자체나 인구밀도가 높았던 서울시가 교통대책 일환으로 차고지 증명제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제주처럼 자동차 소유자에게 차량 보관 장소인 주차장 확보 의무를 부여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에 대한 악영향과 차고지 유무에 따른 빈부 격차 심화 우려 등으로 좌절됐다. 그러다 제주도에서도 교통난과 주차문제가 대두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2월 국내서 처음 도입됐다.
차고지 증명제의 차량 증가 억제 효과는 뚜렷했다. 제주도의 연도별 자동차 증가 추이를 보면 2014년 신차 등록대수가 1만9,798대(7.0%)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2만4,688대·8.2%), 2016년(2만5,989대·8.0%)까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다 차고지 증명 대상에 중형차가 포함된 2017년엔 1만8,756대(5.3%)로 상승세가 다소 꺾였고, 2018년 1만3,397대(3.6%) 증가를 기록한 데 이어 2019년엔 1%대 증가율(3,973대·1.03%)을 기록했다.
이는 강력한 행정조치 덕분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지난해 6월부터 주소 이전 시 차고지를 확보 못한 차량 소유주를 대상으로 차고지 확보 명령 위반에 대한 행정처분 수단으로 자동차 번호판 영치 외에 과태료도 부과하고 있다. 과태료는 1차 위반 시 40만 원, 2차 50만 원, 3차 이상 60만 원을 부과한다. 과태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가산금이 부과되고 자동차나 부동산, 예금 등에 대해 압류조치도 이뤄진다.
내년부터 차고지 증명 대상에 경차가 포함되면 차고지 확보가 어려운 구도심 주택가 주민이나 원룸 등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차량 구입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변경 등록을 하려면 거주지 인근 공영주차장이나 민간주차장을 임대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차고지 증명용 공영주차장의 1년 요금은 동 지역 90만 원, 읍·면지역은 66만 원이다. 민간주차장은 연간 100만 원이 훨씬 넘는 곳도 있다.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사무처장은 “갈수록 교통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제주지역에 차고지증명제가 반드시 필요한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며 “하지만 제도 시행 과정에서 차량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이나 청년층 등의 차고지 확보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 관계자는 “차고지 증명제 시행 이후 신규 자동차 등록 건수가 매년 줄어드는 등 제도 시행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제도 안착을 위해 차고지 조성비용을 지원하거나 공영‧민간주차장 임대 방법을 안내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