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아낀 이재명, 홍준표의 동문서답... 경선서 효과 본 토론 전략

입력
2021.10.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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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의 질문]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대선 경선 TV토론회 분석



20대 대통령 선거는 코로나19로 경선부터 TV토론회 비중이 크다. 다수의 경선 후보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으나 그 어느 때보다 수준 떨어지는 토론이라는 평가가 많다. 13일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이재묵 교수와 함께 대선 토론회를 분석해봤다. 그는 “콘텐츠가 좋고 말을 잘하는 후보는 유승민·박용진 후보라고 하겠지만 홍준표·이재명 후보의 토론 전략이 효과를 봤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진단한 뒤 "유권자가 더 냉철한 선택을 해야 정치가 바뀐다”고 말했다.


“무속 논란도 검증해야 할 대상”

-이번 대선 토론은 준비 안 된 후보들이 난립해서인지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듯하다. 네거티브만 많고 정책 검증이 별로 없다는 평이다. 여야 TV토론을 총평한다면.

“사실 토론회 절반 정도는 정책 토론에 할애했다. 그런데 토론회에 대한 보도가 '왕'자 논란, 실언 등 재미있는 내용에 집중된 면이 있다. 토론회를 보지 않은 사람한테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는 후속기사가 필요하겠다. 또 토론인지 정견발표인지 모르는 후보들이 많았다. 박용진·유승민 후보 정도가 공격적으로 압박 질문을 했다. 상위 후보들은 준비된 멘트로 질문 시간 대부분을 써버리고 답변 시간은 10초만 주는 식이다. 질의응답을 통해 순발력이나 실력을 볼 기회가 없었다. 가분수 질문을 하지 말라는 규제가 필요할 듯하다. 컷오프 이전 너무 많은 후보가 나오는 토론은 심도 있는 토론이 불가능해 보인다. 상위 후보와 군소 후보를 나눠서 정책 역량을 검증할 필요가 있겠다.”

-더불어민주당 토론회는 바지 논란으로 시작해 대장동으로 끝났는데 국민의힘 토론회도 '왕'자 논란, 초지일관 부정선거 주장, 막말 공방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토론회를 봐야 하나 하는 실망과 이 또한 검증 대상이라는 생각이 엇갈린다.

“토론회의 목적은 첫째 후보의 정책 역량이 얼마나 풍부한지 보는 것, 둘째 경력과 업적 평가, 셋째 정치인으로서 믿고 나라를 맡길 사람이 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2, 3번에 해당하는 것들이 네거티브라 불릴 수 있지만 검증이 필요하다.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만 질의를 하고 너무 인신공격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된다. 더구나 최서원(최순실)씨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자문위원이 아니라 비선 무속인과 국정을 논의하는 게 아닌지 봐야 한다. 손바닥에 왕자를 새기는 것이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본 적 없는 드문 일인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윤 후보는 ‘여자들이 점 보러 다닌다’는 젠더감수성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거나, 황 후보의 부정선거 주장에 검찰총장 출신인데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정당별로, 후보별로 누가 가장 부각됐거나 바닥을 드러냈나.

“누가 토론을 잘했나 못했나는 유권자마다 다른 기준이 있어 평가가 어렵다는 것부터 말하고 싶다. 지지하는 정당·후보를 더 잘했다고 평가하고 상대 정당·후보를 못했다고 보기 쉽다. 말 잘하고 논리적이고 정책 콘텐츠가 좋아 보이는 사람을 꼽는다면 유승민·박용진 후보다. 하지만 유권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정책 역량을 중시하는 20대, 고학력자, 중도·무당층에게는 디테일이 있는 유·박 후보가 어필하겠지만, 인간미나 인상을 중시하는 어르신들은 이들이 1위 후보를 다그치고 코너로 모는 걸 보고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 인간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말 아낀 이재명, 경선에선 성공 전략”

-인물별로 평가해 보자. 우선 여당의 이재명 후보 토론은 어땠나.

“말을 너무 안 한다. 1등이니까 곤란한 질문들이 쏠릴 수밖에 없는데 딱 준비한 말만 했다. 대장동 의혹에 대해 ‘토건세력이 다 가져갈 것을 내가 50% 회수한 성공 케이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지지자들은 그 정도만 말해도 좋게 해석한다. 그러니 불필요한 논란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전략이 경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 등 정책에 대해선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본선 토론에서 승부할 생각 아닐까. 본선에선 대장동 의혹 토론을 최소화하고 정책 토론을 많이 할 듯하다. 경선에선 어차피 핵심 당원의 지지가 높고 일반 여론조사도 높게 나오는 터라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과반 지지가 나왔으니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정책을 괜히 꺼내서 논란에 휩싸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안전 전략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누가 될지 모르지만 만약 홍준표 후보가 본선에 오른다면 두 사람 토론 시청률은 역대급으로 높게 나올 것 같다.”


“이낙연의 네거티브, 상대 결집 역효과”

-경선 막판에 표가 결집한 이낙연 후보는 어땠나.

“중도와 중도보수에 어필했다. 민주당이 일반 국민 사이에 급진적이고 개혁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낙연 후보는 총리 시절부터 인기 있었던 것이 진지·엄격·근엄한 이미지, 말을 격조 있고 차분하게 한 덕분이다. 나이 지긋한 중도층과 중도보수가 가장 좋아할 사람이다.”

-그러나 토론회 초반부터 네거티브에 주력한 것은 실망스러웠다. 이재명 후보의 백제 발언이 그렇게까지 비난할 일인가 싶고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서도 제도적 문제는 짚지 않고 개인만 공격하니까 오히려 자신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아무래도 호남에 민주당 전통 지지층이 많으니 호남에서 큰 격차로 이기겠다는 생각에 결집을 위해 백제 발언을 언급한 듯하다. 근본적으로 토론의 효과가 자신의 정책 역량을 어필하고 상대를 검증하고 인간적 매력을 어필하는 세가지 측면이 있는데 상대 검증에 너무 꽂혔다. 2위로 수세에 몰리다 보면 1위와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컸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과 인간미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엄근진 이미지로 중도·중도보수, 이재명 후보를 탐탁지 않아 하는 층에 어필했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을 잃었다. 주변에서 이낙연 후보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네거티브가 강해질수록 ‘절대 이낙연 지지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 네거티브가 강하면 상대를 부각시키고 상대의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낸다.”

-추미애 후보는 의외로 이재명 후보를 방어했다. 결국 득표율이 높았다.

“여자 대장부 이미지가 부각됐다. 거의 모든 이슈에서 검찰개혁,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또 진영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다. 이낙연·박용진 후보는 1위인 이재명 후보를 검증하고 공격하는데 추 후보는 ‘토론회는 컨벤션 효과를 위한 것이다’ ‘자중지란이나 과도한 공격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재명 후보를 많이 방어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 지지층, 윤석열 후보를 싫어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 어필했다. 경선에서 이재명-추미애 표가 같이 움직이고 이낙연-박용진 표가 같이 움직이는 경향이 보였다. 하지만 중도층은 추 후보의 발언이 불편했을 수 있다. 그럴 거면 민주당 당원만 투표하지 일반 선거인단을 왜 모았나 했을 것이다.”


“홍준표 동문서답 스킬, 지지율 더 뜰 것”

-야당 후보들 중에선 누가 눈에 띄나.

“홍준표 후보가 가장 재미있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도 홍 후보가 좋다는 사람들이 있다. 막말 논란이 있고 말을 거칠게 하는데도 인간적이라는 평이다.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동문서답과 되받아치기를 잘하는지 놀랍다. 호남 토론회에서 다른 후보들은 모두 이재명 후보의 호남 공약을 안 봤다고 답하는데 홍 후보는 ‘이재명 후보는 하도 말 바꾸기를 많이 해 볼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제3의 시각을 펼쳐 보인다. 불리한 질문이 들어오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되묻는다. 예를 들어 윤 후보가 ‘홍 후보가 2017~2018년 당대표 할 때 막말 많이 하고 해서 보수당이 궤멸 위기를 맞았다’고 하니까 대답은 안 하고 ‘그때 당신은 어디 있었냐’고 몰아 윤 후보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게 경륜과 경험일 것이다. 되받아치고 능수능란하게 넘어가는 스킬이 좋다. 정치 신인인 최재형 후보 등이 긴장감이 역력한 것과는 달리 어떤 질문도 받아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인다. 토론 후 윤 후보를 위로하는 등 감정도 상하지 않게 한다. 대중은 홍 후보가 토론을 잘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토론할수록 지지율이 오를 것이다.”

-스킬이 좋고 대중에게 먹힌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회피해서 검증이 안 되게 만드는 게 문제 아닌가. 국민면접에서도 패널들이 진주의료원 폐쇄에 대해 집요하게 묻자 ‘이런 질문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나 안 찍는다’며 그냥 넘어간다. 코로나 시국에 공공의료 역할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대답하지 않는다. 되받아쳐서 이긴 듯한 느낌만 준다.

“그런 문제는 결국 사회자가 개입해야 할 것 같다. 과거 손석희씨는 토론회 사회를 볼 때 권위를 갖고 개입했었고, 2017년 대선은 사회자가 너무 많이 개입한다는 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선지 이번 대선 토론회에선 사회자 개입이 거의 없다. 본선 토론 때는 사회자가 주도권 토론자의 질문에 집중해 답하고 되묻는 질문은 자기 시간에 하라는 식으로 최소한의 교통정리를 하면 좋겠다. “


“윤석열, 정책보다 주변적 논란으로 손해”


-윤석열 후보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토론에 거부감 있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식견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정책 논쟁이 아니라 ‘왕’자 논란, 젠더감수성 떨어지는 해명 등 주변적 문제로 표를 잃었다. 정책 이야기를 더 하고 긴장을 덜 했으면 오히려 나았을 텐데 토론회에서 인간미가 떨어졌다. 토론회 효과를 정확히 분석해 봐야 하지만 토론회 거치면서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 보인다. 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20대의 윤 후보 지지율이 한 자릿수다. 40대는 이재명 후보 지지가 강하고, 60대 이상에서 윤 후보 지지가 높다. 또 사무직에서 지지율이 9% 정도로 낮다. 교육수준 높은 사람에게 윤 후보가 어필하지 못 한다는 뜻이다. 고시 패스하고 스펙 좋은 사람인데도 그렇다. 여성 지지율도 낮다. 즉 청년, 사무직, 여성에게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뭘까를 고민해야 한다. 젠더감수성을 높이고 말실수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 여성, 마이너 언론, 외국인 등을 비하하는 발언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단순히 말실수가 아니라 엘리트 중심주의, 약자를 무시하는 인식이 뿌리박힌 것 아닌가 의심된다.

“어떤 후보도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 본선에서는 정책 토론이 더 본격화할 것이다. 공부는 많이 하는 것 같고 큰 줄기를 세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내 것으로 체득돼 있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유승민 토론 실력보다 인간적 매력이 역부족”

-그 밖의 후보들은.

“유승민 후보는 토론에 대한 자신감이 보인다. 공부 잘하고 경제학 박사에 한국개발원(KDI) 출신이니. 모든 이슈에 대해 다 잘 답변한다. 다만 인간미를 중시하는 유권자에게는 어필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희룡 후보는 지지율이 아주 높지 않았던 만큼 공격, 검증보다 자기 어필에 치중했다. 나는 이만큼 준비돼 있다는 것에 주력하고 질문은 단순했다. 확실한 지역 텃밭이 없고 중앙 정치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던 이유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4위로 컷오프 통과한 것에 고무된 정도다. 황교안 후보가 탈락한 것은, 국민의힘이 이념 스펙트럼이 다양해도 당면과제는 정권교체라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준석 대표를 선출한 것과 같은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유 후보가 토론을 잘하는 것은 알려진 사실인데 지금은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TV토론의 효과가 어디까지냐는 것과 관련이 있겠다. 중요한 건 사람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저 사람 똑똑하네’에서 ‘저 사람 찍어야겠다’까지 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토론 평가는 많은 경우 정파적이고 후보 선호에 좌우된다. TV토론의 효과에 대한 미국의 연구를 보면 유권자가 갖고 있던 신념, 후보 지지를 강화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 전통적 결론이다. 특히 정파성이 확고한 유권자는 더욱 그렇다. 지금은 정당에 관심 큰 사람들이 관여하는 시점이다 보니 국민의힘 주류 지지자에게는 유 후보가 크게 어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홍 후보는 유 후보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덮어씌우는 전술을 쓰고 있다. 사실 전통적 국민의힘 지지층이 화를 내려면 오히려 윤 후보한테 더 내야 하지 않나.

“사람의 이미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윤 후보는 풍채 좋고 술 좋아하는 이미지가 많다. 스펙은 엘리트지만 소탈한 큰 형님 이미지가 인간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유 후보는 인격적으로 좋지만 선비나 교수 느낌, 훈계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손해 보는 면이 있는 듯하다.”


“진영 갈등 고조로 TV토론 효과 제한적일 듯”

-TV토론이 유권자 선택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건가.

“말한 대로 다수 연구는 우선 유권자의 기존 지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두번째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중도층, 부동층에는 TV토론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토론을 자주, 집중해서 본 경우 더욱 효과가 크다. 2017년 대선은 실제 토론의 효과를 확인한 사례다. 안철수 후보가 토론회에서 MB아바타, 갑철수 등을 언급하면서 이미지 손상을 입어 지지율이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유 후보는 심상정 후보와 함께 토론을 아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워낙 진영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벌어지고 있어 토론의 효과가 있을까 싶다. 흥행 효과만 있을 듯하다. 누가 올라가든 격하게 붙을 텐데 정책 역량을 검증한다는 취지를 달성할지는 회의적이다.”

-결국 토론이고 뭐고 후보 이미지가 표를 얻는 데에 결정적인가.

“학자들이 후보자 이미지 연구도 많이 한다. (2012년 미 대선에서 맞붙었던) 버락 오바마와 미트 롬니에 대한 여론조사 문항이 기억난다. 당신이 밥을 먹는다면 누구랑 먹겠느냐는 질문에 백이면 백 오바마와 먹겠다는 답변이 나왔다. 롬니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토론할 때 경직된 모습, 모르몬교 특유의 모범생 이미지가 있어 밥 먹기가 편하지 않은 것이다. 케네디와 닉슨의 TV토론은 더욱 고전적인데 케네디가 말도 잘하지만 이미지가 친근했다. 유 후보를 위해 조언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소탈함과 빈틈이 있는 모습 즉 인간적 매력을 드러내는 전략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선거는 미인대회라는 말도 있지 않나.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 마음이 안 가면 안 찍는다.”


-이런 식이니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당이 개혁의 길을 걷거나 정치가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이 안 보인다. 퇴행적이고 과거지향적인 후보들이 유력하다. 여야 다 싫다면서도 제3지대나 진보정당 후보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게 정상인가.

“지금 우리나라 정치가 진영 갈등이 너무 고조돼 있어서 그렇다. 갈등의 핵심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라 싫어하는 정당 중심이다. 네거티브 파티즌십이다.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항상 높은데도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더 높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그를 중심으로 뭉친다. 국민의힘은 누구든 후보만 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쪽은 지지율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고 저쪽은 제3 후보가 표를 앗아가지만 않으면 누가 후보가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2017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의 득표율이 꽤 높았는데 지금은 기사도 안 보인다. 국민의힘에서 원·유 후보가 올라온 것이 변화의 최선인 것 같다.”

-국민의힘 토론회를 보면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격 수위가 점점 높아져서 이제는 후보라 부르지도 않고 배임이냐, 횡령이냐를 따진다. 구속은 기정사실이고 거의 판결하는 수준이다. 너무 단정적인데 이래도 괜찮은가.

“공교롭게도 국힘 후보 4명 중 3명이 검사 출신이다. 법 전공자, 법조계 출신이다 보니 상대를 여당 후보로 보기보다 어떤 법을 어겼는지를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내 토론회니까 우리 후보 검증부터 하고 본선에서 상대 당 후보 토론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행하게 사망하면서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있었던 정치 규범이 증발해 버렸다. 이념적 양극화를 넘어 정서적·감정적 양극화가 고조돼 있다. 내가 대통령 되면 감옥 보낸다는 말을 하고, 이재명 후보도 ‘위리안치’를 이야기했다.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각자 지지층을 동원한다.

정치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보복이 반복되면 국민만 피곤한 게 아니라 본인도 다친다는 점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보면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한 것은 헌법이 아니라 민주주의 규범, 즉 관용과 자제라고 한다. 상대가 아무리 싫어도 민주당 170여 석, 국민의힘 100여 석은 유권자가 만들어준 지형이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생각이 다른 유권자가 공존하지만 그 대표자들은 간극을 줄이면서 정치를 실현하는 게 민주주의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금도를 넘어선 안 된다. 자제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번에 누가 정권을 잡든 보복의 질곡만큼은 끊기를 바란다. 국민 통합을 이뤄내길 바란다. 양당의 강성 지지층은 불쾌할 수 있겠지만, 선출직 후보들이 덩달아 그래선 안 된다. 유권자도 바뀌어야 한다. 정치가 답답하고 진영 갈등이 심각하다면서 정작 본인은 안 바뀐다. 공약도 안 보고 토론회도 안 보고 그냥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다. 지독한 갈등과 보복의 사슬을 끊으려면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하고 그건 유권자가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중도층이라 규정하는 사람들이 변화의 밑거름을 뿌려야 한다. 유권자 자신부터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유권자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국민의힘 후반부 경선 토론회, 대선 본선 토론회가 남았다. 어떤 토론이 되어야 할까.

“국민의힘의 경우 이재명 후보에 대한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왜 보수정당 후보가 돼야 하는지 어필하기를 바란다. 보수정당의 정책 역량을 보이고 보수 혁신을 어떻게 할지 비전을 제시하는 토론이 돼야 한다. 본선 토론회는 유권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될 만큼 정책을 보여주고, 상대 후보를 검증하더라도 비방과 네거티브보다는 상대 정책과 과거 업적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바람직할 것이다. 사회자가 적절히 개입하는 역할을 하고 너무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도록 포맷 조정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유권자다. 토론회를 좀 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후보, 우리나라를 위한 후보를 찾아보라. 가끔은 블라인드로 당을 지우고 후보를 지우고 보자. 역량 좋은 후보를 찾아보자. 미래성장 먹거리, 반도체 전쟁, 미중 패권 전쟁 등 얼마나 중차대한 이슈가 많은가. 단순히 우리 정당의 이익, 개인의 이익보다는 나라를 위해 역할을 할 준비된 후보를 뽑아야 한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