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보지도 못한 청춘이 또 스러졌다. "언젠가 요트 사업을 해보겠다"고 꿈꾸던 청년.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을 생각해 수험료마저 공사 현장 아르바이트로 마련하던 속 깊은 아들. "아낌없이 퍼주던" 순둥이 친구. 전남 여수의 한 요트 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특성화 고교생 홍정운(18)군은 끝내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관광객 안내가 업무인 줄 알았다. 사장의 요구는 딴판이었다.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제거해." 현장실습생은 '싼 맛에, 편하게 부리기 좋은' 착취 대상이었다. 물을 무서워해 잠수 자격증도 못 땄던 홍군은 12kg짜리 납 벨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살려고 발버둥쳤지만 옆엔 아무도 없었다.
홍군에 앞서 스러진 청춘들도 그랬다. 죽을 만큼 위험한 일을 홀로 떠안았다. 인천에서 아파트 외벽 청소를 하다 줄이 끊겨 떨어져 죽은 젊은 가장(29),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용균(24)씨, 평택항 컨테이너 300㎏ 무게 날개에 깔려 숨진 이선호(23)씨,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김군(19). '돈 제일주의' 앞에서, 먼저라던 사람은 제일 먼저 쓸려 나갔다.
안전도 생명도 돈 때문에 팔아먹는 이 나라가 손쉽게 책임을 떨구는 방식은 돈이다. 김용균씨 유족에겐 1억3,000만 원, 이선호씨 유족에겐 1억3,900만 원, 김군의 유족에겐 7,900만 원이 산업재해 보상금이란 이름을 달고 지급됐다. 살아 있을 때 받은 평균 급여로 계산한 기준이었다.
하청업체가 절반 이상 빼가고 남은 김용균씨 월급은 220만 원. 김군의 월급 144만 원도 중간 착취로 100만 원이 떼인 액수였다. 죽어서도 강요당하는 가난. 청춘들의 생을 앗아가 놓고 기껏 쥐어준 1억 원의 목숨값은 그렇게 매겨졌다.
보상에도 '급'은 있었다. 5년 9개월 일했던 곽 대리(31)는 이명과 어지럼증 '증상'만으로 50억 원의 산재 '위로금'을 받았다. "살기 위해서" 골프를 친다는 곽 대리의 아빠는 곽상도 의원이다. 곽 대리의 동료는 15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절반가로 분양받았다. 국정농단 수사를 지휘한 박영수 특검의 딸이었다.
"어떤 청년의 목숨값은 1억 원도 되지 못하는데, 어떤 전직 판검사, 전직 관료, 전직 국회의원은 이름값으로만 수십억 원을 받아 처먹고, 한자리씩 나눠먹는 세상이 정상입니까."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박용진 의원의 사자후 연설에 많은 이들이 울컥하는 건, 이름값 50억 원에 기가 찬 이유도 있지만, 목숨값 1억 원이 너무 분해서다.
'이름값'은 계급 특권 대물림의 상징이다. 법조인, 관료, 정치인, 언론인 등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기득권 집단이 '좋은 형님', '아는 동생', '대학 선후배'로 얽히고설켜 그들만의 돈 잔치를 벌인 화천대유는 엘리트 카르텔 부패의 전형이다. '넘사벽' 리그를 낮추고 쪼개지 않는 한, 이 땅의 불평등은 사라질 수 없다.
정치는 바빠졌다. "부패 기득권과의 최후대첩"을 선포하고 몸통을 때려잡겠다고 서로 난리다. 그 몸통을 키운 게 본인들인 줄은 모르고. 홍군 친구들은 촛불을 들었다. "더 이상 일하며 죽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의 절규에 정치는, 우리는 이제 무어라 답할 건가. 이러고도 공정, 정의, 개혁을 입에 올릴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