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메인 요리보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에 더 끌릴 때가 있다. 경주에 비견되는 일본의 고도 나라에 갔을 때가 그랬다. 도시의 상징인 꽃사슴도 보았고, 사찰도 두리번거렸다. 시간이 남아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다. 두꺼운 시간의 궤적을 입은 공간이 21세기로 달려왔다.
가끔 그런 공간이 있다. 밖에서 볼 때 안에서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끌림. 본능에 따라 들어갔다. 이곳은 나카가와 마사시치(中川政七) 상점의 뿌리인 ‘유나카가와(遊中川)’ 본점.
우아함과 귀여움의 중간 즈음에서 균형을 잡은 생활용품점이다. 나카가와 마사시치로 말하자면 1716년부터 나라에 자리 잡은 터줏대감 상점이다. 당시엔 마직물 사업이 본업이었다. 상점은 하나의 브랜드로 변모하고, 2008년 취임한 나카가와 준 대표에 의해 일본산 공예품에도 진심을 다하는 가게가 됐다. 요즘 전 세계가 몰입하는 ‘지속가능’의 선구자인 셈. 지역 공예품 생산자와 협업해 가치 있고 팔릴 만한 상품을 만들어 공예업계의 활로를 열었다. 이런 모범 앞엔 자동 반사다. 지갑이 열릴 수밖에. 어느 것도 하나 같지 않고,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문이 닫혀 몇 번을 어슬렁거렸는지 모른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오래된 목조주택. 그곳에 걸린 현판이 올해로 445년 된 역사를 귀띔해 준다. 막상 들어가니 좀 시시하다. 완벽한 정리벽에 의한 제품 진열에 실망한 것도 잠시, 점원이 나서서 살아있는 스토리를 들려준다. 뭐 하나 관심을 두면 곧바로 꺼내어 제품의 가치를 줄줄 읊는다.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유서 깊은 먹 상점이다.
잘 써지고 잘 지워지지 않는 명품 먹이 가격대별로 진열돼 있다. 국가에 먹을 납품해 벼슬을 받았으니, ‘먹=코바이엔’이라는 최고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상점 뒤로는 먹이 탄생하는 작업실이 있다. 먹 만들기 체험 혹은 장인의 먹 만드는 과정을 어깨 너머로 구경할 기회다. 예약을 못 해 당연히(!) 놓쳤다. 붓을 사오지 않아 못내 아쉬웠으니, 다시 방문하는 것으로 확정.
나라 속 또 다른 나라인 ‘나라마치’는 옛 시간을 단단히 붙들어놓은 거리를 이른다. 대략 1,000년 전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 속에서 조용히 잠자는 듯한 공간, 드르륵 수줍게 나무문을 열었다. 어라 신세계다. 떨어진 당을 충전하는 디저트 진열대를 지나 빛을 따라 나아간다. 미로 또 미로다. 방앗간을 지나니 정원이 나오고 그 끝에 밀실이 숨어 있다. 여기는 전통 가옥을 재탄생시킨 디저트 상점 겸 티 카페.
외관은 소박하고 내관은 기품이 흐른다. 창밖 정원수를 음미하며 디저트를 곁들여 차를 마시거나 여럿이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직접 화과자 기념품을 만드는 공간이 열려 있다. 시작은 1913년 떡집. 현재는 먹기 아까운 어여쁜 코신상(庚申さん·화과자)으로 현지인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액막이로 통하는 미가와리사루(身代わり猿)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하니 몇 점 더 먹었다. 달콤한 행운이여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