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확산되면서 12년 전 이곳에서 민간 개발을 추진했던 이른바 '대장동 원년멤버'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 '씨세븐'을 설립해 사업을 주도한 이강길(52) 전 대표와 씨세븐에서 자문단으로 활동했던 6명이 원년멤버다. 이들은 한때 '7인회'로 불리며 대장동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원년멤버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이 과거에 추진했던 민간개발과 2015년 민관합동 방식으로 진행된 대장동 사업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자문단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민간개발 추진 시절 사업 구조와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현재 대장동 사업에서 특정 민간업체가 어떻게 수천억 원의 이익을 독식하게 됐는지 감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2009년 대장동에서 지주 작업(토지 수용) 등 핵심 업무를 총괄하며 6명의 자문단을 뒀다. 씨세븐의 자산관리회사인 '대장AMC' 내부 문건에는 '자문단은 이 대표(이강길)와 개인적인 친밀도가 높아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자문단 6명의 업무는 분업화가 뚜렷했다. 자산관리는 정영학(53) 회계사, 국회 대관 담당은 남욱(48) 변호사, 금융 및 투자 담당은 조모(47)씨, 운영총괄 및 시의회 담당은 김모(56)씨, 감정평가 업무는 민모(46)씨, 등기 업무는 정재창(52)씨가 맡았다.
자금 관리를 맡았던 정영학 회계사는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다. 이강길 전 대표는 "정영학은 숫자에 능한 도시개발전문가로 회계 업무를 모두 맡겼다"며 "대장동 사건에 대한 자금 흐름도 정영학은 꿰뚫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욱 변호사는 국회 민원 담당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당시 공영개발을 추진 중이어서 씨세븐은 민간개발 필요성을 국회에 알리고 설득해야 했다. 이 전 대표는 "지인 소개로 남욱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K보좌관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해 친분을 과시했다"고 기억했다. 남 변호사는 K보좌관을 통해 회사에 필요한 국감자료를 빼내기도 했다.
정영학 회계사의 고교후배이자 대기업 건설사 출신의 김씨는 '대장AMC' 대표이사를 맡는 등 행정 업무를 총괄했다. 2013년 위례 신도시 사업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 기획본부장 유동규(52)씨에게 3억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정재창씨는 등기 업무를 수행했고, 대장동 땅의 가치 평가는 감정평가사인 민씨가 맡았다.
성남시가 2015년 민관합동 개발을 확정한 뒤,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만 원년멤버 가운데 '대박'을 쳤다. 두 사람은 대장동 사업 시행사인 성남의뜰에 출자해 1,007억 원과 644억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이강길 전 대표는 "자문단 6명이 담합해 나를 배제시킨 뒤 민관합동으로 무늬만 바꿔 사업을 이어갔다"며 "하지만 나를 배신하고 한 배를 탔던 자문단도 나중엔 또 쪼개졌다. 결국 남욱과 정영학만 '떼돈'을 벌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세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는 2015년 대장동 개발 비리 수사 당시 뇌물공여와 횡령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자문단 6명 가운데 금융 및 투자 업무를 담당한 조모씨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 인척인 조씨는 씨세븐 등이 부산저축은행에서 1,000억 원을 대출받는 데 도움을 줬다. 조씨는 2015년 불법 대출 알선 명목으로 이 전 대표에게 10억3,000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조씨는 대장동 사업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가 투자자문사 킨앤파트너스로부터 초기 자금 457억 원을 빌려오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초기자금 조달 업무는 천화동인 6호 소유주인 조현성(44) 변호사가 했고, 이 공을 인정받아 282억 원을 배당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조씨 역할이 더 컸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 변호사 배당금 일부가 조씨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장동 사업 원년멤버인 남욱 변호사 및 정영학 회계사는 천화동인 7호 소유주인 전직 기자 배모(52)씨를 매개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손을 잡았다. 이강길 전 대표는 "민간개발이 공영보다 낫다는 사실을 홍보할 필요가 있어 배씨를 비롯한 언론인들과 교류가 많았다"며 "배씨가 당시 '내 뒤에 김만배 형님이 계신데 여야 가리지 않고 성남시 쪽에 인맥이 엄청난 분이다. 나중에 따로 독대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후 배씨를 통해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를 소개받아 대장동 사업에 본격 참여했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