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대학 졸업 직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학출 활동가'로 제도권 정치에 뿌리를 내린 진보정치의 상징적 인물이다.
경기 파주 출신으로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 1985년 구로지역 노조들의 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지명수배돼 8년 가까이 수배 생활을 하며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당시 노동계에서의 별명은 '철의 여인'.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하며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19대부터 21대까지 경기 고양갑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진보정치인 중 심 의원만큼 지역구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진 인사는 극히 드물다.
심 후보는 뛰어난 언변과 대중성을 기반으로 고(故)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진보정치의 쌍두마차'로 활약했다. 진보정치 1세대로서 후대 양성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있다.
2019년 7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정의당 대표 시절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기간 더불어민주당 등과 손잡고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을 이끌었으나,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정의당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결국 21대 총선에서 6석을 얻는 데 그쳤고, 이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조기 사퇴했다.
지난해 8월에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을 거부한 같은 당 류호영·장혜영 의원과 관련해 당대표로서 사과 입장을 표명하면서 당 안팎에서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심 후보가 대선 출사표를 던진 것은 이번이 4번째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권영길 의원에게 패했고, 2012년엔 18대 대선 후보로 나섰으나 문재인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중도사퇴했다. 2017년 19대 대선은 완주하며 진보정당 대선후보로는 최다 득표율인 6.17%(5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