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꼬마 녀석들이 마을 공터에 모였다. 전봇대에 눈을 가린 술래가 외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언뜻 "머궁화" "무군화"로 들리지만 제법 또박또박하다. 그 사이 멀찍이 떨어진 아이들이 한달음에 술래 근처로 뛰어온다. 자전거를 탄 아이도 있다. 술래가 뒤를 돌아보자 모두 제자리에 멈춰 부동자세를 취한다.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만 요란하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인도네시아 동네 풍경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도 하고 있더라"는 목격담도 줄을 잇는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인도네시아도 달구고 있다. 아이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어디서 배웠는지 또렷한 한국어로 친구들과 즐긴다. 달고나 뽑기는 젊은이들의 도전 과제가 됐다. '갯마을 차차차'와 더불어 몇 주째 넷플릭스 1, 2위를 다투는 '오징어게임'은 인도네시아와 한국 문화의 동질성을 새삼 확인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한류 세계 1위 인도네시아가 한국과 정서적으로 더 친밀해지는 분위기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인도네시아의 닮은꼴 놀이를 역순으로 소개한다. 한국과 비슷한 문화도 함께 전한다.
오징어게임과 유사한 놀이는 고박 소도르(gobak sodor)다. 소도르는 손을 앞으로 내밀거나 뻗는 것을, 고박은 네모난 들판에서 하는 전통 놀이를 가리킨다. 이름처럼 땅에 네모 영역들을 표시한 경기장을 그린 뒤 공수로 나눠 진행한다. 공격과 수비는 각 2명 이상 팀을 꾸린다. 공격자는 수비대가 지키는 칸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이때 수비자가 공격자의 몸을 만지면 탈락이다. 수마트라섬 바탁토바 지역에서는 마르갈라(margala), 칼리만탄(보르네오)섬 서북쪽 나투나제도에선 갈라(galah)라고 부른다. 성장기 아이들의 뼈를 튼튼하게 하고 친구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훈련시킨다.
징검다리 놀이는 자바,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 발리 등 인도네시아 주요 섬의 전통 놀이인 엥클렉(engklek)과 닮았다. 먼저 바닥에 네모 칸으로 다리를 만들고 한 발을 사용해 차례로 네모 칸을 뛰어넘어야 한다. 넘어지면 마지막 밟은 칸에 돌을 놓는다. 제일 멀리 가면 승자가 된다. 다른 규칙도 있다. 참가자들이 돌을 던져 칸을 채우면 그 칸을 제외한 칸들을 한 발로 지나가는 것이다.
구슬치기는 군두(gundu) 또는 클레렝(kelereng)이라고 부른다. 구슬로 하는 놀이는 다양한데 대부분 한국과 놀이 방법이 비슷하다. 예컨대 땅을 파 구멍을 만들고 구슬을 던져 구멍 안에 제 구슬이 들어가면 승리하는 식이다. 선을 긋고 구슬을 던지는 놀이도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즐긴다. 사고력과 정확성을 기르는 놀이로 통한다.
줄다리기는 타릭 탐방(tarik tambang)이다. 두꺼운 줄(tambang)을 당긴다(tarik)는 뜻이다.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인 8월 17일을 축하하는 대표 놀이다. 개인의 힘보다 뭉쳐 싸운 게 독립을 위해 얼마나 중요했는지 매년 줄다리기를 통해 기념한다. 인도네시아의 상부상조 전통인 '고통 로용(gotong royong)' 정신도 일깨운다. '오징어게임'을 시청한 인도네시아인들은 드라마 속 오일남 할아버지가 알려준 줄다리기 필승 '꿀팁'을 내년 독립기념일 때 써먹겠다고 벼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인도네시아의 줄다리기는 네덜란드 식민 지배 시절 노동자들의 놀이로 거듭났다. 돌, 모래 같은 무거운 물건을 줄로 끌어당기던 고된 강제 노역을 놀이로 승화한 것이다. 그 줄다리기에 담긴 단합과 결속력이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독립을 이룬 토대라고 여기는 것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인도네시아 숨바꼭질 프탁 움픗(petak umpet)과 우리나라 '얼음땡' 놀이와 비슷한 탁 파퉁(tak patung)을 뒤섞은 형태다. 술래에게 잡히기 전 몸을 절대 움직이지 않는 파퉁(동상 또는 조각상)이 되는 식이다. 프탁 움픗에선 술래가 있던 자리를 손으로 치고 "잉로(inglo)"를 외치면 승리한다. 집중력과 민첩성을 기른다.
드라마 속 생존 게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다른 놀이들도 한국과 비슷하다고 거론되고 있다. 공기놀이와 비슷한 볼라 베클(bola bekel), 줄넘기를 가리키는 롬팟 탈리(lompat tali), 팽이치기를 이르는 가싱(gasing) 등이다.
다만 달고나 뽑기 놀이는 인도네시아에 없다. 이 때문에 드라마 열풍 이후 달고나 제대로 만드는 법, 플라스틱 국자에 설탕을 녹이다가 국자까지 녹인 실패담 등이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정밀성, 인내심,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는 설명까지 곁들인다.
복잡한 대학 로고 등 달고나 뽑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무늬를 달고나 사진에 덧붙이는 '달고나 합성 놀이'도 생겼다. 뽑기에 성공해야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지시에 "대학 입학을 포기하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하겠다" 등의 반응이 이어진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놀이 외에도 비슷한 문화가 많다. 국립인도네시아대(UI·우이) 한국어문화학과 졸업생들에게 어떤 게 있는지 물었다. UI는 2006년 8월 인도네시아에 한국어 관련 4년제 학과를 처음 개설한 대학이다.
연장자 존중, 가부장제, 공동체 중시, 정(情) 문화, 매운맛을 즐기는 음식 문화 등이 꼽혔다. 결혼과 출산 과정에도 유사점이 눈에 띄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에서도 결혼 전 신랑이 함을 들고 신부 집을 찾아간다.
한국의 돌잔치 때 아기가 돌잡이를 하는 풍습도 인도네시아에 있다. 전체 인구의 40%인 자바족은 원래 아기가 태어난 지 7~8개월쯤 돌잡이를 한다. 연필, 공책, 장난감, 화장품, 돈 등을 아기가 고르게 한다. 아기가 닭장 안에서 물건을 고른다는 점이 특이하다. 닭장은 아이가 살면서 선한 일들에 의해 보호받길 바란다는 뜻이다. 최근엔 한국처럼 첫 번째 생일에 맞춰 돌잡이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업가 클라라(26)씨는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과 공존하며 타인을 환대하는 방식이 닮았다"고 했다. 그는 "낯선 사람을 돕고 이웃과 친해지려는 인도네시아의 환대 문화 라마 타마(ramah tamah)는 한국의 정 문화와 가깝다"며 "이슬람 문화라 비록 술은 없지만 누구라도 함께 모여 즐기는 걸 좋아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요즘 젊은이들은 좀 더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회사원 비라(24)씨는 가부장 문화를 꼽았다. 그는 "민족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가장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며, 며느리는 결국 남편이나 아들 가족의 일부가 되고,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 밑에서 살다가 결혼 이후에 독립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파투루(25)씨는 "한국에서 고기와 더불어 먹는 쌈 채소는 인도네시아의 랄라판(lalapan)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채소의 종류는 살짝 다르지만 신선한 채소를 즐기는 식습관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양념 삼발(sambal)의 매운맛도 한국과 닮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장맛이 한 집안 요리 실력의 척도이듯 인도네시아에서는 삼발맛으로 요리 솜씨를 가늠한다. 닭꼬치와 닮은 사테아얌(sate ayam), 갈비탕과 유사한 솝이가(sop iga), 생강차인 웨당론데(wedang ronde) 등도 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한국을 들여다보고, 한국과 닮은 점을 찾고 있다. 다른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도 정서적인 유대를 누릴 수 있어서다. 그만큼 한국을 사랑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