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취임 후 각국 정상과 전화 회담을 이어가면서 한국은 빼놓고 있어 대화를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다음 날인 5일 미국을 시작으로 호주, 인도, 러시아, 중국 정상과 차례로 회담했다. 동맹인 미국이나 긴밀한 호주 정상과 대화를 우선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이나 역사적, 지리적 관계를 생각하면 한국을 지나쳐 러시아, 중국과 통화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은 지난해 스가 정권 출범 때도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먼저 회담을 신청했는데도 8일 만에 8번째로 통화해 '한국 패싱' 논란이 일었다. 그래도 그때는 러시아, 중국보다는 먼저였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내 온건파여서 한일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취임 직후 국회 연설에서는 "한국 쪽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갈 것"이라는 태도를 반복한 데다 한국을 두고 "매우 중요한 나라"라던 표현은 "중요한 나라"로 격을 낮췄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 취임 직후 "협력의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소통하며 협력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며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축하 서한을 보냈다. 지금까지 기념식 경축사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에 대화를 촉구했고, 주요 7개국 정상회담이나 도쿄올림픽 등에서의 정상회담에도 의욕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회담 제안은 사실상 일본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과거사 문제는 양국 국민의 역사인식 차이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일본이 변해야 한다는 사람이 58%를 넘지만, 일본에서는 강제징용 문제를 한국이나 제3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비율이 60% 이상이다. 풀기 어려운 갈등인 만큼 정상 간 소통이 중요하다. 기시다의 행보가 한국이 해법을 가져오기 전에는 대화 없다는 과거 일본 정부의 속 좁은 외교를 답습하려는 것이라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