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023년부터 해외에 디지털세를 낸 기업들의 국내 법인세 부담을 줄여 주기로 했다. 삼성·SK하이닉스 등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매출이 발생한 해외 국가와 본국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지 않도록 보완 장치 마련에 나선 것이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기업이 시장 소재국에 납부한 디지털세를 국내에 납부하는 법인세에서 공제해 줄 방침이다. 세부사항은 논의 중이지만, 현재 시행 중인 외국납부세액공제(외납공제)를 준용할 가능성이 높다. 외납공제는 외국에 낸 세금을 국내 납부세액에서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F)는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세 부과 방침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대규모 다국적기업에 대한 과세권을 시장이 있는 나라에 일부 나눠주고(접근법 1)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최저한세’를 도입하는 것(접근법 2)이다.
접근법 1에 따라 2023년부터 연간 기준 연결매출액이 200억 유로(약 27조 원)이면서 이익률이 10% 이상인 기업은 통상 이익률(10%)까진 회사가 소재한 나라에, 이를 넘는 초과이익 중 25%는 각 시장 소재국에 내야 한다. 2030년부턴 적용 대상 기업이 연 매출 100억 유로(약 14조 원) 이상인 기업까지 확대된다.
과세 시점의 실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국내에선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236조 원, 영업이익은 15.2%였다. 이를 적용하면 통상 이익률을 넘는 나머지 5.2%가 디지털 과세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디지털세를 낼 경우 국내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국내기업의 세금 부담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중과세 제거 장치 마련으로 글로벌 디지털세가 도입돼도 국내 기업의 세 부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히려 디지털세 도입에 따라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6일 국정감사에서 “우리 기업이 해외에 납부하는 것보다, 국내에서 다국적기업에 과세권을 행사하는 게 더 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애플 △넷플릭스 △디즈니 등 19개사가 낸 법인세는 1,539억 원에 불과했다. 구글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1조643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납부한 법인세는 97억 원에 그쳤다. 하지만 디지털세가 도입되고 나면 초과 이익의 25%는 우리에게 과세권이 부여되는 만큼, 이들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게 된다.
국내 법인세율 수준(최고세율 25%)을 감안하면 15%의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도입하는 접근법2도 우리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인세율이 15%보다 낮은 조세회피처에 자회사를 두고 세금 부담을 줄여왔던 국내 대기업 등으로부터 정부가 세금을 추가로 걷을 수 있게 돼, 세수 증대 효과는 예상된다.
접근법 2에 따르면 연결매출액이 7억5,000만 유로(약 1조 원) 이상인 다국적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해도 15% 이상의 세금을 반드시 내야 한다. 실효세율이 8%인 저세율국에 자회사를 둘 경우 미달 세액인 7%만큼을 모회사(본사)가 있는 나라에 내야 하는 식이다.
이번 합의안은 오는 1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G20 재무장관회의에 보고된 뒤 이달 말 로마 G20정상회의에서 추인될 예정이다. 정부는 내년 중 관련 세법 개정을 완료하고, 2023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이 디지털세 부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외진출 전략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