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윤여정-'오징어 게임', 한국 콘텐츠가 세계를 뒤흔든다 [뭉쳐서 턴다②]

입력
2021.10.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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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과 배우 윤여정의 해외 영화제 수상,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센세이션까지
세계 시장 사로잡은 한국 콘텐츠의 저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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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드라마가 전 세계 대중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영상 콘텐츠뿐만 아닙니다. 문학, 대중음악, 클래식 등 문화 전반에서 한국 문화·예술인의 재능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가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수상하고, K팝 가수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한국 연주자들이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있습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히트했던 때와는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해외 영화·드라마 제작자들이 한국 콘텐츠를 만들려고 혈안이 돼 있을 정도죠. 대체 한국 문화의 어떤 힘이 세계 시장을 매료시키는 걸까요. 우리 영화·드라마 산업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 부문의 '강남스타일'과 '부산행'"

[고경석] 이번에 유튜브 댓글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한국 콘텐츠는 믿고 본다'는 식의 글이 의외로 많더군요.

[라제기] 저는 ‘오징어 게임’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영화 ‘부산행’ 같아요. 다음에 방탄소년단(BTS)급 드라마, ‘기생충’급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요. 아주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얼마 전만 해도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때문에 한국영화가 대작 아니면 독립영화만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D.P’나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이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긴 하지만 재능 있는 감독들이 영화와 OTT를 오가며 더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이든 배우든 해외 진출도 많이 하게 되면서 몸값도 오를 것이고, 그로 인해 일정 기간 공백이 생기겠지만('코로나19'로 밀린 영화들 때문에 생기는 공백도 있고요) 결국 다른 배우와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가면서 그들이 빈 자리를 채울 테니까요. 드라마든 영화든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라] 일부분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징어 게임’과 이전에 나온 영화감독의 드라마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징어 게임’이 진짜 분수령인 이유는 영화제작자와 영화감독(겸 시나리오 작가)이 만들어낸 첫 메가히트 드라마라는 점입니다. ‘D.P.’도 ‘킹덤’도 ‘무브 투 헤븐’도 드라마 제작사+영화감독+드라마 작가 조합인데요. 드라마계와 영화계 문화가 달라 잡음이 들려옵니다. 협업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요.

[고]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도 영화 찍는 방식으로 드라마 찍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서 시즌2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걱정하는 듯했습니다

[라]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영화제작자와 영화감독이 만들어서 성공한 드라마라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영상산업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주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물론 해외 진출에 있어 전체 영상산업이 더 활성화될 수 있는데, 그걸 지탱해주는 모델이 뭘까 계속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고] 그런 시스템이 단발성으론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시즌제 드라마와는 맞을지 의문입니다

[양승준] 근데 영화제작자와 영화감독이 만들어 성공한 드라마가 어떤 의미일까요?

[라] 드라마는 적어도 드라마 작가 또는 드라마 제작사가 끼어야 성립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영화제작자+영화감독 조합 드라마 기획이 많아지고 있어요. '오징어 게임'이 이런 현상을 좀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영화관 시장은 이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

[양] 그게 지금 팬데믹으로 영화 시장이 죽은 데 따른 변화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OTT 시장이 워낙 커져서, 규모의 경제를 위해 그 쪽으로 더 몰리는.거죠.

[라] 팬데믹이 끝나도 영화관 시장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궁금합니다

[양] 그래서 영화 쪽의 변화가 더 클 것 같아요..

[라] ‘기생충’ 제작한 바른손 이앤에이도 최근 드라마 제작을 공식 선언했고요. 대형 상업영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1,000만 감독에 톱클래스 배우로 꾸리지 않는 한 이젠 만들어지지 못할 듯해요. 그런 기로에서 ‘오징어 게임’이 주요한 역할을 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사들과 감독들은 더 공격적으로 드라마를 만들 거고요, 해외에서 수요도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기존 드라마 PD들의 활동 영역도 넓어질 거고요.

[고] OTT에서 드라마 제작사가 ‘제작 수당’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이려면 시즌 2 이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 저작권을 넷플릭스가 가져가기 때문에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도 별다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오징어 게임’의 경우 황 감독이 기획, 연출, 각본에 공동 제작까지 해서 저작권을 어느 정도 가져갈 줄 알았는데 넷플릭스가 다 가져간다고 하더군요. 넷플릭스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고 세계적인 성공도 가능케 하지만 어떤 제작자나 창작자는 안정적인 수입이나 명성만큼이나 지적재산(IP)을 소유하고 싶고 흥행에 따른 수입도 얻고 싶어할 겁니다. 물론 배우들은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월드와이드 OTT를 선호하겠지만요.

[라] 제가 요즘 만난 제작자들은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영화를 구상해도 제작이 쉽지 않기도 하고요.


세계 시장을 요동치게 하는 한국 콘텐츠, 어떤 힘이 있기에

[고] ‘기생충’-윤여정-‘오징어 게임’의 흐름을 보면서 한국 영상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K팝의 영향이나 플랫폼의 변화도 있겠지만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엔 클래식 콩쿠르에서도 한국 연주자들이 맹활약하고 있죠. ‘오징어 게임’은 심지어 한국 대중의 반응이 더 미지근한 듯해요.

[한소범] 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전부 포함한 문화 콘텐츠 모두에 적용되는 예인 것 같아요

[라] ‘월드 시네마’ 이런 범주에서 벗어난 느낌입니다. 서구인들 시각에서 주류로 편입한 듯합니다. 시대의 급변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한] 이번에 미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한국계 작가인 캐시박홍이 등장한 것도 그렇고 미국을 어쨌든 문화계의 주류 시장이라고 본다면 그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국가가 한국 콘텐츠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미국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제 친구가 파리에서 공부하는데 거기서도 확실히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라] 10년 전쯤부터 달라졌다고 합니다 K팝을 앞세운 한류가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 그때 나왔고요.

[고] 한국 콘텐츠가 가진 어떤 힘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시나요

[양] K팝처럼 마니아층의 입소문을 타고 넓어지면서 신뢰가 쌓인 것 같아요. 그 촉매제가 넷플릭스 같은 OTT가 됐고요.

[한] 넷플릭스 때문에 해외 작품을 즐기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죠. 예전엔 현지에서 상영되고 성공을 거둔 이후에 해외 진출할 수 있었는데 OTT가 대세가 되면서 전세계인이 동시간에 똑같은 작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됐어요. OTT 수혜를 가장 크게 본 나라가 한국 아닐까요.

[라] 디즈니플러스가 11월 한국에 들어오면 글로벌화가 더 가속화되겠죠. 미국에서 영화를 와이드 릴리스로 개봉하려면 프로모션 비용이 몇백억 원이 듭니다. 글로벌 OTT는 가성비가 좋은 해외 진출 통로이죠.

[고] 언젠가부터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시장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치열한 경쟁이 이런 히트작들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클래식이 대표적인데 국내 시장은 정말 작은데 뛰어난 연주자들이 아주 많아요.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리는 극히 한정돼 있으니 엄청나게 노력하고 또 노력할 수밖에요.

[라] 리소스가 그만큼 넘쳐났다고 봐요.

[한] 문화 자원은 넘치고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데.

[고] 넷플릭스가 경쟁사인 디즈니플러스나 HBO맥스에 앞서 해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 같은 곳에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렸을 겁니다. ‘종이의 집’을 만든 스페인이나 한국 같은 나라는 미국에 비해 가성비도 아주 좋죠. 그러다 보니 운 좋게 ‘오징어 게임’ 같은 대박 작품도 나왔구요.

[라] 내부경쟁은 치열하고, 시장은 좁고.


[한]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K팝이 지금만큼 성장할 수 있었죠. 그걸 기반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젊은 세대 중심으로 늘어났고요. 그 관심에 ‘짠’ 하고 증명할 작품들이 OTT를 통해 공개되고 그런 선순환 속에서 한국 콘텐츠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된 것 아닌지.

[라] 예전엔 K팝 회사들이 유튜브에 자막이 들어간 영상을 올려 재미 본 것처럼, 넷플릭스가 신세계인 거죠

[고]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애플TV플러스 등이 차례로 국내 진출하면 미국보다 가성비 좋은 한국 콘텐츠에 더 투자가 늘어날 테고 재능 있는 감독, 배우들이 더 해외로 알려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한] 이번에 재미있었던 게 ‘오징어 게임’에서 얼굴이 밝혀지는 관리자 있잖아요. 해외 사이트에서 누구냐고 난리가 나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엄청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정호연은 팔로워가 원래 40만 명이었는데 지금 1,000만 명을 훌쩍 넘겼고. 해외 배우 ‘덕질’ 하기도 좋은 시대라 국내 배우들한테는 넷플릭스로 눈도장 찍으면 단숨에 세계적 인지도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인 거 같아요

[라] 박서준을 이을 배우들이 계속 나올 듯합니다

[고] 재능 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다 해외로 가버려서 국내 시장에 공백이 생길지, 그만큼 새로운 신인 감독들이 많이 나와서 더욱 풍요로워질지 궁금합니다. 일단 유명 배우들은 요즘 웬만해선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고도 답을 잘 안 준다고 합니다. 1순위가 넷플릭스라더군요. 넷플릭스가 영상물 산업의 헤게모니와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어요.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정말 궁금합니다.

정리= 고경석 기자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양승준 기자
한소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