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소송이 많지 않았다. 국민들의 권리의식도 부족했지만 무슨 문제가 생겨도 소송으로 가기보다는 타협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서였다. 변호사가 드물었던 그 시절에는 지금의 법무사인 사법서사가 법률 자문도 하고 당사자 간 분쟁을 적당히 타결시키기도 했다. 사법서사들은 고소·고발장 대서(代書)도 했는데, 고소·고발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다른 방안을 찾아보라고 권유를 했다는 미담도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소송 국가'가 되고 말았다. 전국 법원이 소송으로 뒤덮여 있고 판사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히 소송 지연이 심각한 지경이고 이로 인한 불만도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당사자들은 대법원까지 가서 끝장을 보려는 심리가 강해서 항소와 상고도 엄청나게 많다. 이처럼 소송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에 기름을 부은 것이 고소·고발의 폭증이다.
2007년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의 고소·고발은 인구 1만 명당 연간 86.8건으로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1.3건에 비해 무려 67배나 많다고 한다. 이것도 10여 년 전의 통계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것이니, 대한민국은 '고소·고발 왕국'이라고 할 만하다. 고소·고발은 특정한 양식을 요하지는 않지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고소·고발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친고죄는 고소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범죄의 경우에도 고발이 있어야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경향이 있다. 인지 수사를 하면 표적 수사를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고, 고소·고발 사건 자체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야 정치권이 툭하면 서로 고소·고발을 하는 바람에 '고소·고발 왕국'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정치적 논쟁 과정에서 나온 사실과 거리가 있는 발언을 콕 집어서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이란 이유로 고소·고발하는 경우가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 순간에도 여야 정치인들이 서로 간에, 또는 상대 진영 언론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하는 난타전을 벌이고 있으니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해괴한 풍경이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누런 봉투에 고소·고발장을 담아 들고 자랑스럽게 검찰청을 찾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여야 정치권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인데, 최근에는 대검찰청의 한 부서가 야당에게 고발을 하라고 친절하게 고발장을 작성해서 전달했다는 의혹이 발생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 조사를 거쳐 공수처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작년 총선 직전에 대검의 어느 부서가 고발장을 여러 건 작성해서 야당 관계자에게 전달했고, 그중 최소한 한 건은 야당이 실제로 고발을 하는 데 사용했음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고발장 등 관련 자료를 언론에 넘겨서 '고발 사주(使嗾)' 논란을 촉발시킨 사람을 두고서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일 수 없는 물적 증거인 고발장의 진실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현직 검사와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전자 통신을 통해 고발장 파일을 보내고 받았다니 대한민국 검사의 법의식이 그런 수준인지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고발 사주'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국기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수사 개시와 기소 여부를 엄정하게 판단해서 처리해야 할 검찰이 고발장을 손수 작성해서 야당에 전달했고 그것이 실제 기소로 이어졌다면 그것은 희대의 국기 문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이 과거부터 관례적으로 있어 왔는지, 아니면 최근 한두 해 동안에만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