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상 비슷하게 받는 것 같아 좋기도 하지만 활발하게 살아갈 생이 남은 분에게 가야 할 상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연출한 영화만 102편. 거장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임권택(85) 감독은 수상을 마냥 좋아하지 않았다. “끝난 인생인데 상을 받게 됐다”고도 했다. 그는 6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한국 영화인 최초로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 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밝혔다. 안경을 쓸 때 손이 심하게 떨렸고, 목소리 힘이 약했다.
‘화장’(2015) 이후 그의 영화 이력은 멈춰 있다. 그는 “차기작 계획은 없다”며 “아무리 친해지고 싶고 간절해도 이제는 제 스스로 영화로부터 멀어져야 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이 된 지 59년. 임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씨받이·강수연), 칸영화제 감독상(취화선),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수상 등의 성과를 올리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여러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데 큰 영화제에서 수상을 기대하는 언론 등의 압력에 영화 인생을 쫓기며 살았다”고 했다. “좀 더 여유 있게 즐기면서 영화를 찍었어야 했다”고 후회를 보이기도 했다.
100편 넘게 영화를 만들었지만 아쉬움이 남아 있다. “한국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을 보여주는 우리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지 못해서다. 임 감독은 “이제는 기회도 없고 기회가 주어져도 더 잘하는 사람에게 넘겨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영화 인생 버팀목이 된 동료를 꼽아달라고 하자 “한 번도 칭찬을 안 해서 늘 꾸중을 듣고 사는 우리 집사람(영화배우 채령)”이라고 답했다. “넉넉한 삶이 아닌데, 아직도 영화감독으로 대우받고 살게 해줘 감사하다”고도 했다.
파란만장한 영화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고 하자 임 감독은 “102편 영화를 만든 인생을 어떻게 한마디로 압축하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축약해 말해줬다. “영화가 좋아서 그걸 좇아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