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유기동물 입양을 돕는 '발라당 입양카페'. 몰티즈 초롱이(4세 추정)가 새 가족을 만나는 날이다. 초롱이는 올해 6월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편의점 앞에서 발견됐다. 2.4㎏의 작은 덩치에 야윈 상태였지만 사람을 잘 따르고 털을 깎은 흔적이 있어 한 때 누군가의 반려견이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름표나 내장형 인식칩은 없었고 공고기간 20일 동안 보호자도,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초롱이에게 남은 길은 안락사뿐이었다.
초롱이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동물복지지원센터 관계자의 눈에 띄면서 안락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원센터는 서울과 경기지역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동물구조관리협회(동구협)에 들어온 유기동물 가운데 안락사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조해 새 가족을 찾아주고 있다. 지원센터는 초롱이를 동구협에서 데리고 나와 보호하며 입양처를 찾았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입양하겠다는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원센터는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동물구조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동행)이 운영하는 발라당 입양카페의 도움을 받아 초롱이의 입양처를 찾아주기로 했고 초롱이는 이곳에서 조기만∙김주영씨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김주영씨는 "18년 동안 기르던 반려견을 보낸 지 2년이 흘렀다"라며 "아이들이 반려견을 너무 기르고 싶어해 유기견 관련 정보를 찾던 중 온라인 카페에서 초롱이가 눈에 띄어 입양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들에게도 동생으로 생각하고 데려와야 한다,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라며 "온 가족이 사랑으로 돌보겠다"고 덧붙였다.
'발라당 입양카페'가 들어선 공간은 휴업 중인 애견카페였다. 서울시는 올해 4월 동행과 손잡고 66㎡규모의 애견카페를 도심 속 유기동물 입양카페로 변신시켰다. 시내에 입양카페를 운영함으로써 시민들이 보다 쉽게 유기동물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이들에겐 봉사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10년 가까이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입양 보낸 노하우가 있는 민간단체인 동행이 연말까지 이곳에서 유기동물을 교육하고 입양을 보낼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후보시절 '마약방석'이라는 별명을 안긴 반려견 '앨리스'도 동행 출신이다. 당시 앨리스는 반려동물 정책을 발표하는 문 대통령의 품에 안겨 편하게 잠이 드는 모습으로 큰 화제가 됐다.
동행이 발라당 카페를 통해 지금까지 약 5개월간 구조한 유기동물은 75마리, 이 가운데 58마리가 가족을 만났다. 동행은 동구협에서 외모나 품종에 관계없이 안락사 위기에 처한 개나 고양이를 우선 구조해 데려온다. 현재 발라당 카페에서 지내고 있는 치와와 푸딩(7세)은 다리가 부러진 채 발견돼 이곳으로 와 치료를 받았고, 스피츠 믹스견 장안이(1세)는 양쪽 다리 슬개골 탈구 수술을 받고 입양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카페지만 입양은 지역에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다. 지난달에도 전남에 사는 한 시민이 발라당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백내장이 있는 여덟 살 요크셔테리어 '요요'를 보고 서울로 와 입양을 했다. 발라당 카페 운영을 지원하는 최미금 동행 이사는 "믹스견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나이가 많은 경우 지자체 보호소에서 입양가족을 찾기 쉽지 않다"라며 "하지만 이들도 치료를 하고 기회를 주면 100% 입양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라당 까페의 입양 기준은 까다로운 편이다. 동행의 입양 기준과 동일한데 온라인으로 입양신청서를 작성한 후 서류 통과가 되면 발라당 카페를 방문해 활동가들과 본격적인 상담을 하게 된다. 이후 집 내부와 동물이 지낼 공간, 준비한 물품 사진을 동행 측에 전달하고, 다시 까페를 방문해 끝까지 동물을 책임진다, 파양 시에는 다시 동행에 데리고 온다는 내용이 담긴 입양 동의서를 작성한 다음에야 동물을 데려갈 수 있다.
입양신청서는 네 쪽에 달한다. 심사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부양능력과 책임감이라는 게 최미금 이사의 설명이다. 다른 동물이 아니라 이 동물을 입양해야 하는 이유부터 월 수입, 주거 형태, 자가 여부, 과거 함께 살았던 반려동물 정보, 용납할 수 없는 반려동물의 행동에 대한 체크까지 포함된다. 최 이사는 "동물을 돌볼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는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의지가 있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이다"라며 "절차를 밟아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분들께 고맙다"라고 전했다.
동행이 까다롭게 입양을 보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준비 없이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게 결국 유기동물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 이사는 "우리나라 유기견은 가정번식을 통한 '지인찬스'가 문제다"라며 "반려동물을 키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에게 한 마리 키워보라며 권하는 문화가 유기동물이 발생하는 비극의 시작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반려동물을 기르게 된 경로는 '지인에게서 무료로 분양'이 42.8%로 가장 많았다.
까다롭게 심사해 입양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파양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게 이필라 동행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파양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동물을 입양하려는 이들에게 개나 고양이의 양육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라며 "중요한 건 입양자들이 입양한 동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또 입양하기 전 임시보호를 권했다. 동물도 보호소가 아닌 일반 가정에서 살아볼 수 있고, 입양하려는 사람도 실제 동물과 생활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다. 그는 "유기동물이 보호소에만 있으면 실제 가정에서 어떻게 지낼지 성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임시보호자가 해당 동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주면 입양을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