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연루된 사법농단 사건으로 내홍을 겪었던 법원이 최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권순일 전 대법관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다시금 술렁이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 이후 법원의 체질과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찬물을 제대로 맞았다'는 허탈감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선 법관들은 법원 조직은 물론 판결에 대한 불신까지 높아지고 있다는데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 법관 대표들로 구성된 법관대표회의는 전날 사법신뢰 및 법관윤리 분과위원회를 열고 퇴직 법관의 취업 제한 문제를 차후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퇴직 후 화천대유 법률고문을 맡은 권순일 전 대법관 사안을 특정해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퇴직 법관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할 지 조만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전·현직 법관들은 양 전 대법원장과 권 전 대법관 관련 의혹으로 사법부 신뢰도에 크게 균열이 생겼다는 점에선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 사건으로 판결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 과정과 결론이 의심받게 된 상황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사법농단' 사건에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이, 권 전 대법관의 경우엔 이재명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결론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특히 퇴직 이후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화천대유 고문을 맡았던 권 전 대법관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김태규 전 부장판사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권 전 대법관이 판결과 연계해 (화천대유로부터) 이익을 수수했다면 사법부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수도권법원의 한 판사도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법원 구성원으로서 매우 허탈하다"고 했다.
법원 안팎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매우 부담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치권에선 이재명 지사 사건의 합의 과정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법원조직법에 따라 전원합의체 합의 과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판결을 믿지 못하겠다는 기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권 전 대법관의 사후수뢰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이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전원합의체의 합의 과정을 들여다보게 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원합의체 심의 과정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에 대비해 대법원의 세밀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