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꿀꺽한 전세 보증금, 3년 만에 129배 급증

입력
2021.10.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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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현 의원실 '전세반환보증 대위변제 현황'
갭투자 성행·전셋값 상승 얽힌 결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허그) 같은 보증기관이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 지급한 금액이 3년 만에 129배 늘었다. 갭투자 확대, 껑충 뛴 전셋값이 세입자가 제때 돌려주지 못한 보증금 규모를 키웠다.

5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허그로부터 제출받은 '2017~2021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전세반환보증) 대위변제 현황'에 따르면 허그가 전세반환보증 계약을 맺은 임차인에게 준 보증금 지급 건수는 2017년 15건에서 지난해 2,266건으로 크게 뛰었다.

대위변제는 임차인이 전세대출 또는 스스로 마련한 자금으로 낸 전세 보증금을 임대인으로부터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인 허그 등이 대신 지급하는 제도다. 허그는 임차인에게 준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만회한다.

임차인이 받은 보증금은 2017년 34억 원에서 지난해 4,415억 원으로 3년 만에 129배 늘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보증금 지급 건수 및 지급액은 각각 1,572건, 3,075억 원인데, 이 추세대로라면 연간 수치는 지난해 수준을 웃돌게 된다.

보증금 지급 규모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에 대해 시장은 갭투자 성행, 전셋값 폭등이 얽힌 결과로 풀이한다. 갭투자는 신규 주택을 구매한 후 전세 보증금으로 집값을 메우는 부동산 투자 기법이다.

갭투자를 한 집주인은 여윳돈이 없는 만큼 전세 계약 만료 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직전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 거꾸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새로 찾지 못하면 보증금을 반환하기 어려워지는데, 전셋값 급등은 이런 '세입자 구인난'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셋값 상승, 대출 규제 확대 등으로 집을 나가겠다는 세입자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갭투자 집주인이 늘고 있다"며 "금융기관은 전세대출을 안전하다고 홍보하지만 전세는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두현 의원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새로운 임대차법 영향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분쟁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사고 방지를 위해 공신력 있는 기관이 권리 이전과 대금 지불을 대행하는 에스크로 등 제도적 장치 보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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