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가을, 출근길에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같은 해에 국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던 사고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모를 수십 차례 칼로 찔러 살해하고 현장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질렀던 패륜아 박한상의 존속살인 사건이다. 범행 이후 수사가 진행되면서 언론과 방송사들은 몇 주에 걸쳐 수사 과정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제 존속살해는 더 이상 이목을 끌지 못한다.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차별을 받았다는 이유로 술에 취해 부모를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고가 지난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두고 일어났지만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2019년 존속살해 비중은 전체 살인 사건 중 7.7%를 차지하고 있으며 존속살해 범죄는 매년 60여 건에 이르고 있다.
비단 존속살해와 같은 극단적 사례는 아니더라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가정과 사회의 파편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전통적인 가치관은 이미 무너져내리고 있다. 특히 잉여 자원의 활용도를 높여 비용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시장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지만, 플랫폼을 기반으로 생산과 소비에 최적화된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상품도 노동력도 관계도 잘게 쪼개져 거래되면서 파편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가족, 조직,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 두었던 가치관은 점점 더 희석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을 구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다양한 가치와 충돌하며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조직도 사회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정의하고 구현하지 못하면 끊임없는 갈등으로 사회적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사회의 존립이 흔들리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급속한 변화 속에 많은 기업들은 혁신을 외치고 있다.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혁신의 지향점을 찾아내어 공유하는 데는 소홀하다. 지향점을 잃은 혁신은 성장을 위한 도구가 아닌 파멸을 초래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던이라는 인구 1만4,000명의 작은 도시가 있다. 인구 대부분이 노동자 계층이며, 아침이면 집 주변 식당에 모여 종업원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푸짐한 아침 식사와 커피를 즐기는 평범한 미국의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특이한 점은 구독률이 117%나 되는 지역신문 '데일리레코드'가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식당을 들르는 손님들의 손에도 어김없이 그 신문이 들려 있다.
1950년에 창간된 '데일리레코드'가 이후 대부분의 지역신문이 폐간되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업자, 후버 애덤스는 지역 주민들의 이름과 함께 지역 소식만을 전하는 신문을 발행한다는 창업 철학을 "이름, 이름, 그리고 또 이름"이라는 구호를 통해서 신문사의 핵심 가치로 삼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한 혁신에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애덤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던 주변 지역에서 원자탄이 터졌다고 해도 우리 도시에 파편이 튀지 않으면 그 소식은 우리 신문에 실릴 수 없다"라고 얘기한다.
플랫폼 기반의 혁신도 세월을 이겨내면서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가치를 만들고 지켜내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고, 플랫폼 기반의 혁신을 통해서 구성원들이 혁신의 성과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