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욕하는 '직장갑질' 줄었지만… "휴가 눈치에 아파도 출근"

입력
2021.10.04 16:21
10면
조직문화 관련 갑질  '심각' 수준
"회사별 특성 반영한 교육 만들어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A씨는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통증에 시달렸지만 쉬지 못했다. A씨의 병가 요청을 상사가 묵살했기 때문이다. 개인 일정에 맞춰 연차를 쓰는 일도 먼 나라 얘기다. 겨우 연차를 낸 날도 상사의 업무 연락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다. A씨는 "업무에 차질이 없는 요일에도 연차를 못 쓰게 하고, 그 상사는 자유롭게 쉰다"며 "업무 지시를 공휴일도, 휴가도 가리지 않아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뒤로 폭행이나 욕설 같은 물리적·언어적 폭력은 조금씩 줄고 있지만,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직장인은 여전히 많다. 상명하복 조직문화 속에서 휴가, 인사평가 등을 빌미로 괴롭히는 '조직문화 갑질'이 위험수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차 자유 없고, 부당한 대우도 참아

4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갑질종합지수(직장갑질 진단지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사업장들은 조직문화와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부문에서 하위 지표를 기록했다.

갑질종합지수는 갑질 경험, 조직문화, 예방대응 체계 등 50개 문항에 응답자들이 매긴 점수를 수치화한 결과다. 0~10점은 인권 존중이 지켜지는 편이고, 11~25점은 조직문화 점검과 개선 필요, 26점 이상은 대책 마련이 시급한 '갑질 심각' 수준이다.

전체적인 국내 사업장 갑질종합지수는 19점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조직문화(26.4점), 예방대응(25.8점) 점수가 신체적, 업무적 또는 업무외적 괴롭힘 등 갑질경험(11.8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직장 갑질이 자유롭게 쉴 수 없고, 부당한 인사평가나 괴롭힘 등을 당해도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는 등 내부 문화의 문제로 집중됐다.

구체적으로 ①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가기 힘들다(34.5점) ②열심히 일을 해도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못한다(32.3점) ③아파도 마음 편하게 쉬기 어렵다(32.2점) ④불만이나 고충이 있어도 자유롭게 털어놓기 어렵다(30.6점) ⑤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신고자 신원이 노출될 거 같다(30.1점) 순이었다. 모두 30점이 넘어 '갑질 심각'에 해당한다.

"괴롭힘 방지 교육 사례·유형 중심으로"

그나마 전체적인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이 줄고 있는 건 긍정적이다. 세부 항목 중 신체 가격이나 물건을 던지는 폭행, 책상을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내리치는 등 위협은 각각 6.6점, 7.0점으로 낮았다. 최근 1년 안에 괴롭힘을 당했다는 비율도 28.9%로 지난해 9월(36.0%)보다 7.1%포인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 이수 경험률이 34.5%에서 47.0%로 12.5% 증가한 걸 보면, 예방교육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는 전반적인 지표일 뿐, 직무 등 특성별 괴롭힘 방지 교육 경험률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 사무직에만 쏠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성별 교육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중이 정규직은 60.0%, 대기업 72.9%, 사무직 58.4%로 높은 반면, 비정규직은 27.5%, 5인 미만 사업장 15.6%, 생산직과 서비스직은 각각 37.5%, 34.8%에 그쳤다.

직장갑질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단순히 법률 내용만 알려주는 형식적 교육으로 끝나면 현장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그 사업장 특성에 맞는 괴롭힘 유형과 사례를 가지고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고 인권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