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는 외무장관 시절이던 2015년 말 “고치카이(宏池会)는 헌법에 애착이 있다. 당분간 헌법 9조 자체는 개정할 생각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하지만 기시다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자신의 발언에 격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바로 “헌법은 중요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말을 바꿨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아예 “4개항 개헌 임기 내 완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민당 총재에 당선된 후 단행한 이번 당직·내각 인사에도 아베의 그늘이 짙다. “아베 정책을 계승하겠다”며 스가 내각에서 임명한 외무·방위장관은 유임했고, ‘아베-아소’와 함께 ‘3A’로 불리는 아마리 아키라를 간사장에 임명해 이들에게 당의 실권을 넘겼다. 스가 내각 때만 해도 니카이 도시히로 전 간사장이 이들을 견제했으나 이제 ‘3A의 세상’이 된 셈이다.
총선을 앞두고도 국민적 지지가 훨씬 높은 라이벌 고노 다로 장관을 사실상 강등시키는 인사를 한 것도 아소 다로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니, 도대체 이번 인사를 누가 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의 ‘듣는 귀’는 국민이 아니라 아베-아소에게 향한 것일까.
하지만 새 내각에서 임명된 각료 20명 중 13명이 첫 입각일 정도로 신선한 얼굴을 다수 등용한 점엔 기대를 걸고 싶다. 당장 당내 기반이 취약한 기시다로서는 안정적 정국 운영을 위해 당직 인사나 외교 안보 분야에서는 아베-아소의 뜻을 따르되, ‘분배’를 강조하는 경제정책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 등 내치 분야에선 새롭게 기용한 장관을 통해 실적을 내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중의원 선거는 물론 내년 참의원 선거까지 무사히 통과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외무장관을 4년 8개월이나 지내 국제 정세에 밝은 그의 ‘듣는 귀’가 적어도 한쪽은 국민과 주변국을 향해 있길 바란다. 지금은 개구리가 뛰기 전에 몸을 웅크리는 때이길,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보수 본류’ 고치카이의 수장으로서 기시다의 ‘본색’을 드러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