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전부터 알았던 친구들과도 주말에 볼 거냐고 묻던 대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어차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게임에 들어가면 거기서 만난다. 매일 스마트폰으로 대화는 하지만 어쩐지 허전하다. A양은 "하루 종일 폰만 잡고 있을 수도 없고 계속 집에 혼자 박혀 있으니까 외롭기도 하다"고 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B(14)양이 제일 하고 싶은 건 친구들과 단체로 하는 피구다. 중학교에서 새 친구를 많이 사귀겠다고 다짐했건만, 1학년이 다 끝나가는 요즘 "친구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다. B양은 "어쩌다 등교해도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점심시간엔 딱 밥만 먹어야 된다"며 "개학하고 처음 만난 애들은 마스크 쓴 얼굴밖에 못 봤다"고 했다.
10대들이 '친구'를 잃어가고 있다. 인간관계에 충분한 경험이 없어 또래와 사귀면서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껴가야 하는 시간을 코로나에 빼앗겼다.
3일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는 온라인 기반의 가볍고 느슨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가 강한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감정노동과 스트레스도 감수해야 하는 오프라인 인맥 관리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상적 관계에 그치는 '온라인 친구'로는 안정적 소속감을 얻지 못하는 역설이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을 친구라고 생각한다'는 만 15~24세는 22.3%(대학내일20연구소 조사)로, 10~14% 수준인 다른 세대보다 훨씬 높다. 우정, 친밀감 등을 느끼고 싶은 관계에 대한 욕구는 1995~2003년생이 477.13점(마크로밀 엠브레인 조사)으로 가장 높다. 이는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생·373.07점)보다 30%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소속감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 어느 정도 내재된 10대들에게 코로나19가 닥쳤다는 점이다. 관계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 대면 만남으로 해소하면 됐는데, 이 선택권이 외부 환경에 의해 박탈된 셈이다. 온라인 관계에만 기댈 수밖에 없고 정서적 단절감은 쌓여가는 악순환을 지금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등학교 2학년생 C양도 점점 관계 맺기에 서툴러지는 게 두렵다. 그는 "격주로 등교하니까 좀 친해졌다가 다시 멀어졌다가를 반복한다"며 "나중에 사회생활도 어려울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고교 1학년 D군은 "학교에서 친구를 연결시켜 주면 좋겠는데, 짝꿍도 없고 혼자서는 아무래도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미 사회는 소상공인 타격, 경제활성화 등을 이유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를 언급하고 있지만, 자칫 전 생애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청소년기 대인관계 불안정성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작정 다시 아이들을 교실에 넣어둔다고 저절로 관계가 회복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대면과 비대면을 균형 있게 넘나들면서 관계의 질을 높이는 '딥택트(deep+contact)' 프로그램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메타버스 등 청소년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활용하면서 오프라인에서도 안정적인 상호작용이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일종의 소통과 정서 연대를 연습하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시각에서다.
이기순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이사장은 "아직 인간관계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기에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해 생기는 소외와 고립감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또래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