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신청했다. CPTPP 주도국인 일본은 중국의 가입신청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CPTPP의 높은 시장개방 수준과 국영기업이나 디지털무역 등 CPTPP 규범을 감안할 때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CPTPP 가입으로 인해 동아시아지역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현저히 축소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가입신청이 껄끄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의 CPTPP 가입신청은 일본에게 유리한 점도 있다. 일본이 이를 이용해 ‘미국의 CPTPP 조기복귀’의 논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CPTPP 가입으로 동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경우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그만큼 어려워질 테니 미국이 CPTPP에 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은 그동안 미국의 CPTPP 복귀를 고대해 왔다. TPP 탈퇴를 명령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중국을 상대로 동맹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조차 CPTPP 복귀 여부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취한 것에 일본도 서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과연 일본의 희망대로 CPTPP에 복귀할까? 워싱턴의 연구소들은 중국의 CPTPP 가입신청을 계기로 미국의 CPTPP 복귀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좋은 기회라고 넌지시 일본을 거들고 있다. 그 이면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워싱턴 지역 싱크탱크들을 정성스레 관리해 온 일본의 노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CPTPP 복귀는 쉽지 않다. 미국 내 정치는 물론 경제상황도 바이든 행정부에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공화당의 공세가 격화하는 가운데 최근 백신접종의 정체로 델타변이 확산과 생산 차질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테이퍼링 조기시행 예상으로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상품무역적자는 8월 들어 876억 달러를 기록하여,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유무역에 대한 노동계의 시각도 호의적이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내 젊은 의원들의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날카롭다. 내년 중간선거를 감안하면 성과를 내놓기에도 바쁜 시간이다.
물론 미국이 중국의 행보를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단 군사적 성격의 오커스(AUKUS) 동맹결성이 아니더라도 최근 유럽연합(EU)과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출범시키고, 아세안과 무역투자협정(TIFA)을 활성화하는 등 중국을 단단히 견제하고 있다. 무역기술위원회는 미국과 EU 간 협력증진 이외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토대로 비시장경제국(중국)의 무역 왜곡 관행에 대응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아세안과의 무역투자협정 활성화도 아세안과 경제협력 증진뿐만 아니라 디지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미국의 대 아세안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 미국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분명 동아시아지역의 통상질서가 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독자행보를 시작한 듯 보인다. 우리의 전략적 대응방안 마련이 긴요한 시점인데 대선 정쟁에 빠져버린 모습밖에 찾아 볼 수 없으니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