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에 뒤통수친 오커스

입력
2021.10.01 18:00
22면
中견제 위해 濠에 핵잠수함 기술이전
미국, 호주·영국과 안보 연합체 결성
프랑스 “개 취급 당했다” 뒤늦은 후회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나라 안이 온통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시비로 시끄럽다. 대장동발(發) 돈 냄새를 맡은 정치 법조 언론인의 민낯에 말문이 막힌다. 반면 나라 밖에서는 화약 내음이 진동한다. 가깝게는 북한의 미사일이 거의 일상처럼 한반도 상공을 가르고, 멀리는 미국과 중국의 남·동중국해 주도권을 둘러싼 포연이 자욱하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영해권을 주장하고 있어 아시아의 가마솥 혹은 중동의 화약고가 옮겨 온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의회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지난해 말 중국군 수뇌부에 전화를 걸어 “미국은 중국을 선제 공격할 의도가 없고, 공격 결정시 미리 알려주겠다”고 증언했을 정도다. 뒤집어보면 우발적 군사 충돌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미중 전쟁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라는 경고음이 결코 빈말이 아닌 이유다.

여기에 영국과 호주가 ‘참전’하면서 판이 사뭇 달라졌다. 호주·영국·미국의 대중견제 안보 연합체 오커스(AUKUS)가 공식 출범했다. 미중 균형외교로 국익을 도모하던 호주가 반중 노선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상대방을 위협하고 윽박지르는 중국의 전랑(戰狼)외교 탓이 크다. 호주는 지난해부터 미중 대결구도가 노골화하자 미국 편으로 돌아섰다. 이에 중국은 호주산 석탄과 철광석에 대해 수입금지를, 와인과 보리에 대해서는 최고 200% 관세 폭탄을 퍼붓는 무역보복으로 화풀이했다. 호주 역시 중국의 글로벌 관계망 구축사업 일대일로 양해각서를 취소하는 맞대응으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결정적인 카드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내밀었다. 호주에 핵잠수함 건조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당근을 내세워 오커스를 출범시켰다. 강대강 충돌로 겉으론 중국이 피해를 입고 있다. 호주산 석탄 수입금지가 부메랑이 되어 중국의 전력난이 자못 심각한 상태다.

오커스 연합체는 프랑스가 미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등 동맹국에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주는 2016년 프랑스와 400억 달러 규모 디젤 잠수함 12척 건조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이전으로 프랑스에 구매계약 철회를 통보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순진하게 굴어선 안 된다. 우리가 힘과 능력을 갖췄음을 보여야 한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프랑스 언론은 ‘미국과 영국을 도왔지만 결국 개 취급을 당했다’고 혹평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치욕의 순간이 있었다. 1637년 인조와 청 태종 홍타이지가 맺은 정축약조다. 눈에 띄는 대목은 조선의 산성 신·개축은 물론 보수공사까지 금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조선의 무장해제를 명문화한 것이다. 청나라 사신은 2년 후 남한산성에서 수리한 부분을 발견한 뒤 “당장 허물고, 내가 국경을 떠나기 전까지 결과를 보고하라”고 대신들을 질타했다고 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승지(承旨)가 항변하려 하자, 한마디 말도 못하게 할 정도로 성을 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인조실록 39권, 인조 17년 12월 6일 무자 2번째 기사). 길들여진 조선은 1711년 숙종37년이 되어서야 북한산성 축조에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국정감사의 시간이 돌아왔다. 지난해 국감에서 경항공모함 도입에 결사 반대한 의원들의 난타전을 기억한다. 당초 예산 101억 원 전액삭감으로 침몰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연구용역 1억 원으로 기사회생한 경항모다. 정부는 내년 예산에 경항모 착수예산 72억 원을 책정했다. 당부컨대 국방위 의원들이 전운 가득한 한반도 정세를 재삼 고찰한 뒤 국감장에 나서길 기대한다. 국방부 국정감사는 5일부터다.

최형철 에디터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