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만든 몬드리안의 정원

입력
2021.10.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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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과 수평선,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며 생긴 공간마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이 채워져 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몬드리안의 구성 작품을 현실세계에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경기 양주시의 나리농원입니다.

지난달 26일 나리농원 상공에 드론을 띄웠습니다. 단순함과 다양성, 화려함과 절제미가 잘 어우러진 농원 풍경은 성큼 다가온 가을을 담고 있었습니다. 드론의 고도를 낮춰 자세히 살펴보니 구절초, 천일홍, 핑크뮬리, 코스모스, 댑싸리, 가우라, 바늘꽃, 칸나, 아스타, 숙근 해바라기 등 4만여 평 넓이의 농원에서 무수한 가을꽃이 제각각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꽃밭과 꽃밭 사이로 난 산책로와 쾌청한 하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찌든 피로감을 날려버리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농원에 심긴 수십 종류 가을꽃 중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핑크뮬리(핑크뮬리 그라스)’입니다. 핑크뮬리는 바람결을 따라 분홍색과 자주색을 오가는 신비로운 색감 덕분에 최근 가을을 대표하는 식물로 SNS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핑크뮬리 군락지마다 나들이객의 발길이 이어지자, 일부 지자체는 여행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조성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나리농원에서 핑크뮬리는 농원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식물이 ‘생태계위해성 2급 식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핑크뮬리는 2013년 미국에서 처음 건너왔습니다. 국립생태원 위해성평가위원회는 2019년 12월 핑크뮬리가 향후 생태계 균형을 깨고 생물의 다양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며 '위해성 식물 2급'으로 판정했습니다. ‘생태계 교란 생물’로 수입·유통·재배 등이 금지되는 1급 식물에 비해 2급은 당장 심각한 위해는 없으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그에 따라 환경부는 각 지자체에 핑크뮬리 식재 자제를 권고했습니다. 기존에 식재된 개체를 제거할 필요는 없으나, 기존 군락이 현재 규모를 넘어서지 않게 관리하라는 지침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이효혜미 국립생태원 외래생물연구팀장은 "핑크뮬리는 원산지가 북아메리카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춥고 건조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퍼지지 않는다"면서 "다만, 우리나라도 최근 이상기후로 인해 겨울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있지만 그로인해 번식우려가 있다고 확정시켜 말할 순 없는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기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습니다.

나리농원의 관리 주체인 양주시청 관계자는 "환경부 권고 이후 핑크뮬리 밭을 갈아엎는 지자체도 몇 군데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단계까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다만, 현재 농원에 식재된 지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핑크뮬리의 인기와 함께 일기 시작한 위해성 논란은 화려한 가을꽃을 기다리는 이들에겐 아쉬운 부분입니다. 핑크뮬리가 만발한 군락지가 더 많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핑크뮬리가 당장 퇴출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리농원처럼 철저한 관리하에 다른 식물들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간다면 말이죠. 만약 이상기후로 핑크뮬리의 관리가 어려워지더라도 그 신비한 색감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외래종이면서도 들여온 지 100년이 지나 토착화한 '댑싸리' 등 유사 식물들이 그 자리를 대체해가고 있으니까요.


서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