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9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강행 처리 시도를 접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속도 조절 당부와 강행 처리 시 후폭풍으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도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특히 그간 집단행동을 자제해온 친문재인계 핵심 의원들은 강행 움직임에 제동을 걸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박병석 국회의장이 주재한 회동에서 '언론제도개선 미디어 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특위는 언론중재법 외에 △정보통신망법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 전반의 제도 개선을 논의한다. 여야 9명씩 총 18인으로 구성되며 활동기한은 12월 31일까지다. 다만 법안 처리 시한을 못 박지 않아 언론중재법의 연내 처리는 물 건너간 셈이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지도부는 '표결 처리'를 시사할 만큼 강경했다. 그러나 강행 처리 여부 결정을 위해 소집한 의원총회를 계기로 기류가 급변했다. 의총 발언자 23명 중 절반이 "'입법 독주'라는 비판까지 받으며 강행 처리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며 강경론과 신중론이 팽팽했다. 이후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의견이 3 대 3으로 갈리면서 '표결 처리' 의사를 밝혔던 송영길 대표도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의총에서는 핵심 친문계 의원들이 그간 침묵해온 온건파에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윤건영 의원은 "언론중재법이 통과된다면 우리와 시민들을 못살게 굴던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되는 프레임을 바꾸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언론과 보수 야당에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고민정 의원은 "국제사회 설득이 얼마나 됐는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 김영배 최고위원은 차기 대선을 언급하며 "법안 처리를 정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홍영표 의원도 "4·7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교훈을 다 잊었느냐"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이례적으로 행동에 나선 것은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측면이 크다. 문 대통령의 공개 주문에도 당이 강행 처리에 나선다면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으로 비칠 수 있고, 문 대통령이 국내외 언론계의 '거부권 행사'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재명 지사와 가까운 의원들은 강행 처리를 주장했다. 최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보도하는 언론들을 겨냥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지사 대선캠프 대변인인 박성준 의원은 "이번에 입법하지 않으면 대선도 어렵고 다음 정부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재정 의원은 "처리하는 게 더 제대로 된 법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의 시작"이라고 힘을 실었다. 이 지사 캠프 측은 "의원들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