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연장’ 개헌안 발표한 벨라루스, 야당 관련자 총격 사살

입력
2021.09.29 18:00
'유럽 최후 독재자' 루카셴코 권력강화 과정서


벨라루스 야당 지지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보안군의 급습 과정에서 희생됐다. 공교롭게도 ‘유럽 최후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권력 영속화를 목적으로 하는 개헌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루카셴코 대통령이 야당 세력을 더 억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KGB)가 28일(현지시간) 수도 민스크의 한 아파트를 급습하는 과정에서 한 남성을 사살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KGB는 성명을 통해 “이 남성이 보안군에게 발포했으며 (보안군) 한 명이 숨졌다”고 덧붙였다. 먼저 위협을 받아 반격 과정에서 이 남성을 사살할 수밖에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의혹의 눈길은 KGB가 야당 세력 탄압에 나선 것이라는 방향으로 쏠린다. 로이터통신은 KGB의 성명에서 사살된 남성을 지칭하는 표현이 ‘테러리스트’였다며 “(이 단어는) 반정부 시위대를 묘사할 때 사용했던 단어”라고 전했다. 벨라루스 관영 벨타통신도 한 의원을 인용해 “이 남성이 야당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야당 관련자를 ‘표적’으로 한 활동 중 빚어진 불상사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게다가 시점도 절묘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날 정부 주요 부서의 권한을 재분배하고 ‘벨라루스 전(全)인민의회’를 만드는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늦어도 내년 2월까지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P통신은 루카셴코 대통령은 개헌안이나 인민의회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면서 “벨라루스에는 이미 의회가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에 대한 탄압을 이어 왔던 루카셴코 대통령이 야당 세력을 배제한 채 자신 입맛에 맞는 ‘거수기’ 대의기구를 만들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7년째 철권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벨라루스 야당은 지난해 8월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이 6선에 성공하자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정부 측은 야당 지지자 3만5,000명 이상을 체포하는 등 탄압에 나섰다고 AP는 덧붙였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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