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이 처음 꺼낸 '개 식용 종식'...정말 현실이 되려면

입력
2021.10.03 20:00
동물권단체 "실태조사·법제화 동반돼야"
농림부·식약처·환경부의 '방관' 지적하며
"대통령 언급에 손놓지 못할 것" 기대감
개 식용 문제 "동물권 측면서 바라봐야"
개고기 합법화엔 "시대에 역행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개 식용 종식'에 관한 언급을 내놨습니다. 지난달 27일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언급한 것인데요.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동물권단체를 중심으로 개 식용을 끝낼 수 있는, 이전과 다른 구체적이고 확실한 '액션'이 취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나옵니다.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1981년 본격 촉발된 개 식용 논란의 역사는 문 대통령의 언급으로 인해 40년 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요. 개고기의 자연 소멸이 아닌 개 식용 금지라는 철퇴가 필요한 이유, 개 식용 금지가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개 식용 문제, 동물권 측면에서 바라봐야"

동물권 단체들은 동물권 측면에서 개 식용 문제를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 식용 산업에서 한국 동물복지의 가장 슬픈 단면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기·유실견이 개농장으로 유입되면, ①땅바닥에 발이 닿을 수 없는 뜬장 속에서 음식 쓰레기를 먹으면서 자라며, ②위생이 엉망인 환경에서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과다 투여받고, ③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됩니다. 철저히 관리되지 않아 그속에서 번식도 이뤄진다고 합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동물 학대가 고착화 된 산업"이라며 "개를 먹어야 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복지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동물복지를 증진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그에 따른 정책들이 마련되는 현 시점에서, 개농장이 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것도 동물권 단체들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유기·유실견처럼 어떤 우연한 계기로 '반려동물' 집단에서 탈락한 개들은 정책으로부터 배제되는 차별이 발생한다는 주장인데요.

육견협회는 이에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르다'며 차별 대우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 개농장에서는 반려견으로 키워질 법한 또는 키워졌던 개들이 다수 발견됩니다. 최윤정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웰시코기, 골든리트리버, 폭스테리어 등 흔히 반려견으로 인식되는 '품종견'들과 반려동물 인식칩이 등록된 개체들도 개농장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했습니다.


질병관리라는 공중보건의 측면에서도 개 식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개 농장이 인수공통질병에 취약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2017년 송대섭 고려대 교수는 개 인플루엔자 변이 양상을 설명하면서 "폐사된 닭을 먹은 개농장 개들로 인해 조류독감이 개에게 친화력이 높은 바이러스로 변이되고, 개 인플루엔자가 사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섞이고 있다"며 "수의사를 포함한 고위험군 감염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형주 대표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질병 예방을 위해 동물 관리를 우선 순위 어젠다로 놓고 있고, 중국 일부지역에서 최근 개를 가축에서 제외한 것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합의 안 됐다'며 문제 알고도 방관한 정부·국회

사실 개농장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 문제는 공론화된 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관계 부처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문제를 못 본 척 내버려 뒀기 때문입니다.

최윤정 활동가는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각각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농림부는 동물복지 관련 부처인데도 도살 방법이 타당한지 등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식약처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납품처 위생 검열이나 실태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환경부는 개농장주가 개들에게 주고 남은 음식쓰레기를 땅에 묻거나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문제에 손을 떼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 국회 때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물의 살상을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이상돈 국민의힘 의원이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는' 축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2018년엔 '개·고양이 식용종식'을 주장한 국민청원에 대해 정부가 "가축에서 개를 제외하도록 축산법 관련 규정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우선안건으로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방관을 지적하는 것은 대한육견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영봉 사무처장은 지난달 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식용견 농장은 열악한 상태로 43년간 방치돼 왔는데 오히려 범죄 집단 취급받고 있다"며 개고기를 합법화하고 관련 규정을 만들면 따르겠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더 이상 방관 없도록... 실태조사·법제화부터"

동물권단체가 문 대통령의 '개 식용 종식' 언급을 환영하는 것은 대통령의 언급으로 더 이상 국회와 정부 부처들이 마냥 손놓고 있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검토'로만 남지 않도록 실제적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달 28일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을 입안하라"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개농장 실태조사는 동물권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사항입니다. 이형주 대표는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했을 때 농장의 개는 어떻게 하고, 유예기간은 얼마나 두고, 종사자들의 보상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려면 실태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카라에 따르면 전국에 2,000~3,000곳의 개 농장이 있고, 상당수는 경기도에 분포돼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지만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습니다.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 도살, 판매하는 행위에 관한 법을 만들어 관련 부처의 단속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사항입니다. 정진아 동자연 사회변화팀장은 "(법제화의 경우) 가축에서 개를 제외하는 게 시작"이라며 불법도 합법도 아닌 현행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축산법상 개는 가축이지만, 가공·유통에 관한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는 개는 가축이 아니라서 규제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최윤정 활동가는 "더 나아가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발의한 '개·고양이 임의도살 금지법'과 같은 법령을 만들고, 개 지육·사체 유통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기 소비 줄이자는 마당에... 개고기 합법화는 시대역행"

즉 개농장에서 이뤄지는 각종 동물학대와 불법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서 실태 조사와 법제화 등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동물권 단체의 핵심 주장입니다. 그러나 육견협회는 "개고기를 합법화해 제대로 단속해 달라"며 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합니다. 양측의 해묵은 줄다리기를 끊어내는 것도 정부의 역할인 셈입니다.

육견협회가 주장하는 개고기 합법화에 대해 동물권 단체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반발합니다. 농장 동물의 인도적 사육·도살을 논의하고 있고, 기후 위기로 인해 고기 소비를 줄이자며 대체육 개발에 투자하는 마당에 가축의 종류를 늘리자(축종하자)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겁니다.

이형주 대표는 "현재 가축화된 종은 개량·사육·도축 방법이 굉장히 오랜 시간 축적되고 연구된 것"이라며 "개의 사육·도축 방법을 연구하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개고기 수요는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지난 100년 동안 가축으로 인정하지 않는 종을 유통하기 위해 축종을 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개도 가축화해서 고기를 얻는 게 이득이었다면 진즉에 이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대표는 "육견협회는 가축분뇨법 시행 추가 유예시설에서 개 사육시설이 제외된 것에 반발하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며 "오랜 기간의 연구를 거쳐 개를 기르는 기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생산비용이 올라갈 텐데 이들이 그 기준을 지킬지 미지수"라고 덧붙였습니다.

정진아 팀장은 "합법화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 가축으로 이용하는 농장동물들조차 복지가 충분히 충족되는 게 아니잖나"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개만 먹지 말자'가 아니라 농장동물의 수와 종을 줄여나가자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국민이 개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합법화에 따른 논란이 오히려 더 크다"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일부에서는 개고기 소비 자체가 줄어 자연 소멸할 것이라며 굳이 금지를 할 필요까진 없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최윤정 활동가는 그러나 "자연소멸을 기다리기에는 학대받는 동물들, 비위생적 환경으로 인한 건강권 문제 등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며 "국가가 나서서 조속히 끝내는 게 맞다"고 반박했습니다.



"대통령, '개 식용 종식' 시대적 흐름 감지하고 언급했을 것"

동물권단체들은 '개 식용 종식'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대통령의 언급은 단순히 그가 동물 애호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내놓은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최근 어웨어의 '2021 동물복지 정책 개선 방향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개·고양이 식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8.1%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또 카라가 방문조사한 경기도 155개 개농장 중 이미 폐업했거나 폐업 전 단계에 있는 개농장 비율도 45.2%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윤정 활동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민법 개정안도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서 논의된다. 대통령 언급이 민법 개정과 별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며 변화의 일환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정진아 팀장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개 식용 종식 얘기를 꺼내는 게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이슈일 것"이라며 "뒤늦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임기 막바지까지 추진하려는 의지 또는 차기 정부가 이어서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낸 것 아닐까"라고 말했습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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