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있었다. 서울로 보내면 큰 도시의 문물과 인프라를 배우며 큰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긴 말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말에는 또 다른 뜻이 숨어 있다. 서울로 보내서 큰사람으로 키웠으니 그 사람은 가족과 고향에 자랑이 된다는 의미이다. 지금도 마을에 출세 소식이 생기면 입구에 축하 플래카드가 걸리고 잔치도 벌이며 기쁨을 나눈다. 다 같이 기뻐하는 이유는 그 복을 나누고 마을도 더불어 잘되게 되는 희망을 담은 잔치이자 의식과도 같았다. 이러한 기쁨의 원리 안에는 순환의 공식이 숨겨져 있다.
과거 서울에 와서 큰 벼슬하고 관직에서 훌륭한 일을 잘 수행한 지방의 인재들은 정년퇴임을 하게 되면 다시 자기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의미는 선산을 지키고 가족에게 남은 생을 헌신하고, 경험과 지혜를 후학 양성과 마을 발전에 공헌하였다는 뜻이다. 과거 도시와 지방의 건강한 순환은 도시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더불어 갈고 닦은 경험과 지식을 노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순환의 고리다. 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삶의 고리는 나아가 지방과 도시의 연계의 바탕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관계를 통해 좋은 인재를 발굴하고 추천하여 크게 쓰일 수 있도록 연계시켜 주기도 했다. 그런 문화가 과거 시대의 지방과 도시의 연결 네트워크 문화였다. 이런 고리의 대표적인 기관 역할을 한 곳이 서원이고 향교였으며 작게는 서당이었다.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서원이 중앙과 지방의 권력의 핵심이 되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방과 도시를 연결 짓는 정치 문화의 연계성은 당시 나름의 건강한 체계로 순환되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상은 어떠한가?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지방 도시와 수도권 도시에 정부 부처나 기관, 공기업을 지방 도시에 유치하는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실효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세종시에 근무하는 공직자 중 다수가 실제 거주지는 타 도시이면서 특혜분양을 받았다는 말이 있듯이 너도나도 수도권 도시로 성공을 위해 모여들기는 하지만 다시 낙향하여 고향마을 발전을 위해 수고하거나 희생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군 단위 소도시의 현재 거주 인구가 5, 6만 내외인 경우 실제로 수도권에서 거주하는 출신 인구는 30만 가까이 된다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고향은 시간이 갈수록 노령화되고 젊은이들은 떠나며 침체되어 가는데 고향을 떠난 신 실향민들은 도시에서 도시 이주민의 삶으로 정착해 버린 것이다. 그나마 명절이면 부모님과 어르신을 뵙기 위해 방문하는 고향이 시간이 지나 부모님마저도 돌아가신다면 그 집은 빈집으로 변하고 고향은 그대로 무덤처럼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도권 도시들은 갈수록 더욱 비대해져가는 슈퍼 메가시티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수년 전 서울은 1,000만 명의 인구를 찍었고 수도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권은 1,300만 명에 가까이 몰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외의 광역도시는 3분의 1도 안되는 수치를 보이는 가운데 고향은 시간의 흐름 속에 갈수록 비어져 가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나 기회를 꿈꾸기는커녕 사람이 없는 마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